[ 쇼군츠라 / 잘 가라, 이별의 나날들 ]

띵대댕 2016. 3. 12. 23:14
  [ 쇼군츠라 / 잘 가라, 이별의 나날들 ]


  카츠라는 그리 시력이 좋은 편에 속하지 못했다. 이것은 그에게 하여금 안경을 쓰게 하였고, 덕분에 그의 높디 높으신 애인이 그의 시력에 각별히 신경을 기울였다. 어릴 적에는 좋았으나, 점점 자라가며 세밀한 것은 제대로 볼 수가 없게 되었다. 안경을 쓰게 한 것도 그의 애인이였다. 도쿠가와 시게시게. 단 하나, 카츠라 코타로의 연인이자 높은 신분에 속하는, 이 나라의 정점. 쇼군, 즉 정이대장군이였다. 먼저 고백을 건넨 것은 시게시게의 손과 목소리였다. 그 날, 그는 카츠라를 부르고서는 아무도 오지 말라는 명을 내리고서는 카츠라를 바라보았다. 잠시 카츠라의 시선에 눈치를 보던 시게시게는 머뭇거리더니 이내 꿋꿋하게, 이 세상에서 유일하게 그에게만 가능한 고백을 건네었다.

  "카츠라여. 나는 이 나라의 정점이다. 나는 그대의 최대의 적임에 분명하다. 그러나, 그대를 연모하고 있었으니. 받아들여 준다면야, 이보다 나를 기쁘게 해줄 것이 없겠구나."

  라는 아주 당돌한, 나라 최대의 적. 양이지사의 수장에게 건네는 말 한마디였다. 시게시게는 카츠라에게 한 송이 붉은 장미를 건네었다. 그대에게 줄곧 선물하고 싶은 꽃이였는데, 받아준다면 기쁠 것 같구나. 그대에게 비녀를 선물할 수는 없지 않겠는가. 밖으로 나가지 못하게 하여 몰래 나가 직접 구해온 것인데, 마음에 들었으면 좋겠구나. 카츠라는 살짝 오른손을 내밀어 장미꽃을 받아들었다. 시게시게의 손의 온기가 남아있었다.

  "잠시...생각해 보아도 되겠는가. 시게시게 공."

  아직 조금 일렀던 것인가. 허면 기다리도록 하겠느니라. 시게시게는 그 후 매일 밤 중 몰래 궁을 빠져나와 답지 않은 짓을 하고는 했다. 카츠라의 기지 앞에 찾아가 이제 준비가 되었는가? 라고 물어보았다. 필시 준비가 안 되었음을 시게시게도 자각하고 있었을 터인데, 그가 이리도 단정하지 못한 행동을 하는 것은 전부 카츠라 코타로, 이 남자 때문이리라. 지금 잡지 않으면 평생 잡지 못할 것만 같은 그런 느낌에 시게시게는 느껴본 적도 없었던 불안감이 느껴져 평온한 물에 물방울이 떨어지는 것을 보고 화들짝 놀라 생각하다가도 멈추는 일이 종종 생겼다. 카츠라는 그런 시게시게를 잘 알았고, 그랬기에 자신이 인정하였던 시게시게의 고백을 나흘 째 되는 날에 받아들였다.

  "나라의 가장 높으신 분께 그런 말을 들었는데, 내 어찌하여 그대의 마음을 거절할 수 있겠는가."

  카츠라는 시게시게를 고고한 남자라 생각했다. 시게시게를 직접 만난 것은 카츠라의 쇼군에 대한 생각을 완전히 틀어놓았다. 카츠라가 옛적에는 폭탄으로 테러를 일으켰을 정도로 싫어하는 막부에서 마츠다이라나 진선조의 몇몇을 제외하고 거의 유일하게, 그것도 막부의 가장 높으신 분인 정이대장군 도쿠가와 시게시게를 인정했다는 것은 본인 스스로 생각하기에도 놀라운 일임이 분명했다. 그리고 언젠가부터 이 남자에게 호감을 품게 되었다. 언제부터인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옛적보다 침침한 눈에도 불구하고 그에게는 항상 빛이 났다. 쇼군의 빛인 건지, 아니면 제 눈에만 비치는 반짝거림인 건지. 그렇게 그 날부터 하나, 둘, 둘 모두 어색하고도 처음인 초보 연애를 시작했다.


  카츠라도, 시게시게도 연애와는 거리가 먼 사람들이기에 주변에서 조언을 구하고는 했다. 그러나 신분상 자주 만나지는 못하는 입장에 얼굴을 본지 며칠 된 참이였다. 그래서 둘은 편지를 쓰고는 했고, 그 날도 그런 날들 중 하나였다. 카츠라는 시게시게가 저들 둘이 22일째 되는 날에 제게 선물해 주었던 안경을 쓰고 편지지에 한 자 한 자 적어 나갔다. 간혹 편지를 쓰다가 말문이 막힐 때에도 있었는데, 그럴 때에 카츠라는 자리에 앉아 몇 분 동안 생각하다 좋은 문장이 생각나면 그것을 쓰고는 했다.

  [카츠라여. 잘 지내고 있는가? 이곳은 경비가 삼엄하여 나갈 수가 없구나. 미안하다, 먼저 고백한 주제에...]

  그런 건 괜찮으니 크게 걱정하지 말게. 나 또한 잠입하지 못하고 있지 않은가. 그대는 어디 편찮은 구석은 없는 겐가? 나야 항상 건강하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고 생각했네만...

  [...그리고 소요에게도 그대에 대한 이야기는 대충 말해 놓았느니라. 아주 아름다운 나만의, 내 사람이라 해 두었는데, 그대를 아름다운 여성으로 아는 모양이야...]

  ...그거 참 공주님께서 아시면 기겁할 일이구려, 시게시게 공. 하기야, 나의 정체를 알게 된다면 그대에 대한 이상한 소문들이 퍼져나갈 것이 아닌가. 앞으로도 그리 숨기도록 하시게...

  [...그리하여 오늘도 화창한 하루인 것 같더군. 카츠라, 다시 한 번 말하지만 잡히지 말도록. 물론 나는 그대에게 벌을 주고 싶지는 않으나, 입장 상 그럴 수밖에 없을 것이니.]

  ...이런 날에는 그대와 한번 만나고 싶은데, 그럴 수가 없으니 아쉬울 따름일세. 시게시게 공, 내가 누구인가? 몇 년 동안이나 막부에게서 신출귀몰하게 도망쳐 왔던 도망의 코타로가 아닌가. 그런 걱정은 하지 말게.

  오늘은 이게 끝인가. 식상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카츠라는 고개를 돌려 달력을 보았다. 자신이 표시해둔 무언가가 보였다. 눈가를 찡그리고 실눈을 떠야만 보일 만한 크기였기에, 카츠라는 그렇게 했다. 4월 6일, 오늘. 4월 7일...50일. 카츠라는 혼이 나갈 지경으로 머릿속이 복잡해지기 시작했다. 내일이 50일? 누군가에게 머리를 얻어맞은 듯한 멍함으로 뇌가 하얗게 지워지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내일이 그와의 50일이다. 부하들에게서 조언을 들은 바로는 22일이나 50일 등의 기념일은 꼭 챙겨야만 매너 있다고 상대방이 느낀댄다. 아, 정말 후회가 된다. 어제 달력을 봤어야 했는데. 현재 시각, 오후 3시 16분. 미쳐 버리겠다. 카츠라는 안경을 벗고 황급히 편지를 봉투에 넣고서는 봉투를 챙겼다. 누가 보면 뭐에 놀라서 저리 도망치나 느낄 만큼 전속력으로 뛰어 우편 배달을 부탁했다. 시계를 보았더니 이미 3시 30분이다. 9시간도 남지 않은 시점, 무언가를 준비해야 해. 곰곰이 생각하다 딱 하나를 생각했다.

 
  "오라버니, 내일이 무슨 날인지 아세요?"

  소요 공주가 가벼운 발걸음으로 시게시게의 방문을 찾아가 두드리며 물었다. 소요는 이내 문을 열고서는 그에게 가까이 다가간 후 미지근해 맛이 없는 차를 건넸다. 딱 봐도 신나 보이는 얼굴에 시게시게의 얼굴에 절로 미소가 번졌다. 여동생의 기쁨에 행복하지 않을 오라비가 어디 있으리. 시게시게는 그녀가 가져다 준 찻잔을 들고 웃으며 홀짝 마셨다.

  "신나 보이는구나, 소요. 내일이 무슨 날이길래 그러느냐?"
  "네? 오라버니, 정말 모르세요?"

  나에 관련된 일인가? 본래 시게시게는 날짜를 잘 기억하는 성격은 아니기에 어떤 행사나 약속이 있으면 며칠 후로 외우고는 했다. 혹은 달력을 보았는데, 현재 자신의 방에 걸려 있던 달력은 소요가 보고 있었기에 시게시게는 며칠 동안 날짜도 보지 못하고 지냈다. 소요는 기가 막힌다는 얼굴로 시게시게를 쳐다보며 높은 목소리로 말했다.

  "오라버니, 내일 그 아리따운 아가씨와 50일이시잖아요!"

  푸흡. 시게시게는 예상치도 못한 말에 마시던 차를 뿜고 말았다. 뭐, 50일? 50일이라고? 그런데 내가 그걸 기억하지 못한 거라고? 차를 뿜은 시게시게를 공허한 눈으로 쳐다보던 소요가 그의 생각을 읽기라도 한 건지 오라버니, 지금은 저녁 8시인데요, 라고 말해 주었다. 고맙다, 소요야. 덕분에 시게시게는 깜박할 뻔했던 기념일을 기억하고 4시간 사이에 준비할 수 있는 선물을 생각해야만 했다. 아, 뭐가 좋나. 눈이 안 좋으니 안경은 저번 때에 선물했었고. 같이 놀기라도 할까? 아니다, 이건 너무 식상하지 않나. 지금은 몇 월이지? 3월 후반. 아, 봄이로군. 그렇다면 벚꽃이 피었겠구나. 시게시게는 내일 저 혼자 외출할 것이니 절대 따라오지 말라는 명을 내리고서는 그에게 줄 소소한 선물을 준비했다.


  카츠라는 바삐 거리를 돌아다녔다. 분명 이쯤에서 항상 만났었는데. 가부키쵸의 거리 한복판에 있는 강. 시게시게와 카츠라는 만나는 일이 생기면 종종 이곳에서 움직이고는 했다. 카츠라는 발을 동동 구르며 준비한 선물을 꽈악 쥐었다. 얼른 좀 와라, 이 멍텅구리 장군아. 이 시게시게란 사람이 달력을 보지 않는 것 정도는 알았는데, 50일 정도는 좀 기억하면서 편지에도 써놓으란 말이다, 제발. 물론 미리 보지 못한 나도 잘못이지, 잘못이긴 한데 말이야. 생각을 포기한다. 그냥 둘 다 바보다. 왜 안 오냐고 짜증을 내려 했는데 마침 뛰어오던 시게시게가 카츠라를 보고서는 다가오고서는 말했다.

  "카츠라, 그대, 오늘이 50일이라는 사실을 기억하고 있었던 모양이지?"
  "하, 하하. 내가 누군가! 기억하고 있었던 것이 당연하지 않나!"

  뻥을 쳤다. 정말 장렬한 뻥이다. 그래, 스스로 무너졌다면 장군 앞에서라도 조금 당당하게 있어야 하지 않겠나.

  "그대, 시게시게 공은 기억하고 있었는가?"
  "사흘 전부터 준비하고 있었어, 카츠라."

  시게시게는 양심의 가책에 찔리기 시작했다. 우편 배달에 며칠이 걸린다 해도 정말 돌아버리겠다. 어쩌다가 이런 허접한 선물을 주는 건지, 정이대장군이라는 남자가 참 바보같기도 하구나.

  "카츠라, 그대에게 보여주고 싶은 곳이 있다. 날 따라오게."

  시게시게는 카츠라의 오른손을 홱 집어채더니 냅다 뛰었다. 준비한 것을 잡고 있던 왼손이 아니라 천만다행이다. 그렇게 뛰고, 뛰고, 또 뛰었다. 그렇게 해서 도착한 벚꽃나무 길의 모습이 카츠라의 눈에 담겼다. 이 에도의 최고의 도원향인데, 마음에 드는가? 카츠라여. 카츠라는 시게시게를 바라보더니 멋쩍은 웃음을 지으며 어쩔 수 없다는 목소리로 말했다.

  "마음에 든다니 마니 그런 질문을 할 것이 뭐가 있나. 드는 것이 당연한 것이 아닌가."

  그러면 잠시 이곳을 걸어볼까. 아아, 그러도록 하지. 시게시게는 카츠라의 오른쪽에 서고서는 그의 오른손을 잡고 천천히 걷기 시작했다.

  "이러니까 마치 결혼식장에서 신랑과 신부가 같이 걷는 장면 같지 않나?"
  "그러게 말이야. 하객들은 저 벚꽃잎들과 벚꽃나무들인가?"

  그런 셈이지. 카츠라, 나는 아직 그대를 많이 좋아해. 시게시게 공, 나는 자네가 생각하는 것보다 그대를 사랑하네. 정말인가? 카츠라. 그럼, 정말이고 말고, 쇼쨩. 바닥도, 옆도 분홍빛으로 물든 길이 끝나갈 무렵에 카츠라가 왼손에 쥐고 있던 상자를 열었다.

  "시게시게 공, 이거, 내 작게 준비한 선물이네만..."

  카츠라는 시게시게에게 손수 접은 종이학 1000마리가 담긴 병을 내밀었다. 카츠라, 이건? 내가 직접 접은 것이네만, 마음에 들었으면 좋겠네. 아, 그리고 이것은 공주님께 선물해 주게. 카츠라는 함께 챙겨 왔던 꽃핀을 시게시게의 손 위에 얹어 주었다. 길이 끝난 곳에는 한 줄기 강이 흘렀다. 이미 노을이 지고 있었다. 강줄기는 붉은 색과 노란빛이 섞여 흘러가고 있었고, 그 위에는 분홍빛 꽃잎들이 올려져 있었다. 그곳에는 시게시게와 카츠라, 둘만이 있었다.

  "카츠라, 50일인데. 이렇게 끝내면 섭섭하지 않을까?"
  "섭섭하겠지, 당연히."
  "줄곧 해주고 싶다고 생각했어."

  시게시게는 카츠라의 입술에 쪽, 짧게 맞대었다 뗐다. ㅅ, ㅅ, ㅅ, 쇼쨩?! 카츠라의 얼굴은 새빨갛게 물들었고, 시게시게 또한 붉어진 얼굴에 노을빛이 비쳐 더욱 붉게 보였다. ㅋ, 카츠라. 이런 거 처음인데, ㅇ, 앞으로 조금씩...은 어떨지...마음에 들었는가? ㅁ, 마음에...들었지. 아, 내가 무슨 정신으로 했는가. 시게시게는 자신이 너무 바보같아 손으로 머리에 콩 하고 살짝 꿀밤을 때렸다.

  "ㅋ, 카츠라...너무 거기에 연연하지 말고, 그...50일이니까. 한번쯤 해보는 것도 나쁘지 않다고 하기에..."
  "좋았으니 걱정하지, 말게..."

  붉디 붉은 얼굴에 묻은 감정을 절대 잊지 못할 거야. ㄱ, 그러면 이만 출발, 하지...시게시게 공. 시게시게의 손이 후들후들 떨렸다. 이번에는 시게시게가 오른손을 내밀고 카츠라가 왼손을 내밀었다. 시게시게는 카츠라에게 받은 선물을 왼쪽 손에 꼬옥 간직하고 있었다. 이 감정을 어찌 잊을 수 있을까. 벚꽃잎이 노을빛에 붉은 빛으로 물들어 아름다운 날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