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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긴츠라 / 망각의 꽃 ]
띵대댕
2016. 2. 13. 23:06
[ 긴츠라 / 망각의 꽃 ]
카츠라 코타로는 배신당했다. 동료에게, 친구에게, 한 때 같이 싸웠던 친우가, 타카스기 신스케가 그의 등을 돌리고 떠나갔다. 연민의 마음이 있는 것은 아니였다. 그렇다고 그를 완벽히 떠올리지 않을 수는 없었다. 카츠라는 본디 동료의 배신에 누구보다 상처받는 남자였다. 단지, 태연한 듯이 아무렇지 않은 얼굴로 무표정을 짓고, 웃음을 지었다. 감정을 망각하기 시작한 것은 마음에 크나큰 상처가 생긴 후였다. 카츠라 코타로는 망가지기 시작했다.
카츠라는 한때 그 남자를 사랑했다. 며칠 전, 그가 돌연 고백을 해 왔다. 은발의 천연파마를 가진 동태눈의 사내는 누구보다도 올곧은 마음을 지녔다는 것을, 카츠라는 잘 알았다. 사카타 긴토키는 카츠라 코타로에게 말했다. 사랑해, 즈라. 잠시 멈칫했다. 마음도, 동작도. 그러나 카츠라는 더 이상 긴토키를 사랑하지 않았다. 그가 긴토키를 사랑했던 것은 이미 과거의 이야기였다.
"미안하네, 긴토키."
긴토키에게 이 이상은 말해줄 수 없었다. 자신을 사랑한다 말해준 남자는 쓸쓸히 뒷모습만 남긴 채로, 새벽을 향해 사라져 갔다.
카츠라가 처음 긴토키에게 느낀 것은 동경이였다. 소싯적부터 자신은 언제나 혼자였다. 혼자서 모든 것을 이겨낼 수 있고 모두를 지킬 수 있는 강한 지도자가, 사무라이가 되자. 카츠라가 옛적부터 가지고 있던 단 하나의 신념이였다. 신념 하나를 가지고 검을 휘둘렀다. 후욱, 후욱. 어린아이가 휘두르는 검 치고는 꽤나 묵직한 소리였다.
"하아, 하아, 하아. 1278! 1279!"
강해져야만 해. 강해져서 모두를 지켜야만 해. 지도자는 언제나, 가장 겁쟁이여야만 해. 누군가가 나를 뛰어넘어, 내가 소중한 것을 지키지 못해서는 안 돼. 모두를, 지킨다.
"한 판!"
"즈라, 너 무슨 일이냐? 졌잖아. 거 참. 무슨 일 있냐? 아까 보니까 검 휘두르는 것도 이상하던데."
"즈라가 아니다. 카츠라다! 네 알 바가 아니다, 긴토키."
긴토키가 비아냥거리며 카츠라에게 다가갔다. 쇼카손주쿠 서당. 저마다 자신의 무사도를 가지고 앞으로 나아가는 서당이였다. 긴토키도, 카츠라도, 타카스기도. 전부 이 곳에서 배운 동문이였다. 항상 붙어다니던 셋이였지만, 셋이 생각하는 것은 전부 달랐다. 그러나 단 한 가지, 같은 것이 있었다면, 서로를 믿고 의지하는 마음이였다. 긴토키는 잠시 카츠라를 빤히 바라보더니, 이내 슬쩍 다가갔다.
"즈라. 한 판 할까? 내가 있을 때에는 그냥 친구로 있어도 된다고 했잖아."
"..."
카츠라는 천천히 고개를 돌리고서는 가만히 긴토키에게 초점을 맞추었다. 그래, 그랬었지. 그래서 내가 널 좋아했었지. 그 때부터 계속. 처음 네가 나에게 그냥 즈라로 있어도 된다고 해도 된다고 말해주었을 때부터. 카츠라는, 아니, 즈라의 입꼬리가 살짝 올라갔다.
"좋다, 긴토키. 지금 이 순간만큼은, 카츠라가 아니다. 즈라다."
"그래야 내가 아는 즈라지."
두 사람은 이내 검을 맞대었다. 30분에 걸친 대련에서, 승자는 없었다. 단지 둘은, 계속 웃고 있었을 뿐이였다. 지금 이 순간이 가장 행복하다는 듯이.
카츠라는 긴토키를 절대적으로 신뢰했다. 전쟁 전부터도, 전쟁이 끝나고 나서도. 옛적에 사랑했던 남자라 하더라도, 지금은 사랑하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카츠라는 긴토키를 믿고, 언제나 동료라고, 친구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사모한다는 감정과는 사뭇 달랐다. 그렇게 생각했던 어느 날, 비가 내렸다. 주르륵, 누군가의 눈물이 하늘에서 떨어졌다. 누구의 눈물일까, 카츠라는 하염없이 하늘을 바라보았다. 잠시 긴토키에게라도 가 볼까. 카츠라는 외출 준비를 끝마치고 거울을 바라보았다. 좋아, 완벽해. 마지막으로 점검하고서는 이내 발걸음을 돌리려 하던 참이였다. 그런데, 이상한 일이였다. 분명히 아까까지만 해도 선명했는데.
"내가, 어디를 가려고 했더라."
그 순간이였다. 갑자기 목구멍이 막히더니 기침이 났다. 콜록, 콜록. 콜록. 카츠라는 본능적으로 눈을 꼭 감고 입가를 손으로 틀어막았다. 어릴 적부터 감기는 물론이거니와 기침이나 콧물이 난 기억조차도 없었던 카츠라이기에 더욱 기묘한 일이였다. 거기에다가 다른 일로 기침이 날 리도 없었다. 카츠라는 눈을 슬며시 뜨면서 자신의 입가를 가렸던 손을 보았다. 카츠라의 눈동자가 살짝, 흔들리기 시작했다.
"꽃...?"
카츠라가 토했던 것은 침도, 피도 아닌 보라색 장미였다. 이게 무슨 얼도당토없는 일인가. 자신이, 몸에서, 꽃을 토했다. 그것도 어디로 가야 하는지 기억하지도 못하는 장소에 가려다가 꽃을 토했다. 보라색, 장미. 카츠라는 빗물로 얼룩진 이 날을 잊을 수 없었다.
누구더라. 전에는 자신이 너무나도 신뢰하던 남자가 한 명 있었던 듯 했다. 그게 누구였더라. 옷도, 머리도, 이름도 기억나지 않았다. 얼굴도, 목소리도, 손의 감촉마저도 아무것도 떠올릴 수 없었다. 누구였었지. 간혹 가다가 안경을 쓴 소년과 말끝에 해를 붙이는 이국적인 소녀가 자신을 향해 인사했었다. 그럴 때마다 카츠라는 인사해 주었다. 오랜만에 보는구려, 신파치 군. 즈라가 아니다. 카츠라다! 리더, 잘 지냈는가? 그럴 때마다 그들은 말하고는 했다. 카츠라 씨, 요즘은 [ ]씨를 만나서 잘 안 오시네요? 즈라, 너 요즘 왜 [ ] 사무실에 뜸하냐, 해? [ ]쨩이 너 보고싶어 한다, 해. 엘리자베스도 팻말로 보여주고는 했다. 카츠라 씨, [ ] 씨가 찾아오셨는데 어떻게 할까요? 카츠라 씨, 요즘 [ ] 씨에게 잘 안 가시네요. 그들의 말을 들어 보면, 분명 자신이 굉장히 잘 아는 사람이였을 것이다. 그러나 이 대화는 자신이 꽃을 토한다거나, 그들이 먼저 가버린다거나, 진선조 대원들이 자신을 쫓아온다거나 하는 일들 때문에 금새 끝나버리고야 말았다. 언제나 그래, 곧 가야지. 아니, 오늘은 안 된다고 말하게. 안부 잘 전해 주게. 이런 식으로 답을 해 주면서, 아는 척을 해야만 했다. 그래야만 그들이 의심하지 않는다. 그러나 마음속에는 언제나 단 하나의 의문이 자리잡고 있었다.
그게, 누구인가?
카츠라가 보라색 장미를 내뱉는 횟수는 줄어들기는 커녕 점점 늘어나고 있었다. 언제나 콜록, 콜록. 기침할 때마다 보라색 장미가 입 속에서 나왔다. 이 정도면, 자신의 몸속은 아예 보라색 장미로 가득 찬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조차 들 정도였다. 그러던 어느 날이였다. 카부키쵸의 한 남자가 사라졌다. 안경의 소년과 중국풍 소녀도, 엘리자베스도, 카부키쵸 전체가 그 남자를 찾았다. 카부키쵸 정도 규모에 소문이 자자한 남자이면 자신이 모를 리가 없었다. 자신도 이 남자를 찾아야만 할 것 같았다. 그러나 이름도 모르는 남자를 어찌하여 찾을 수 있겠는가. 결국 한심한 자신은 입을 열어버리고 말았다.
"이런 상황에 미안하네만, 자네들이 찾는 그 남자가 대체 누구인가?"
그 남자가 사라진 이래, 5년이 지났다. 자신은 여전히 그가 누구인지 기억하지도 못했다. 꽃을 토하는 병은 점점 더 심해졌다. 소문으로 그 남자는 죽었다고 했다. 누군지도 기억하지 못하는 남자의 장례식에 참석하고 명복을 빌어 주었다. 물론 예의상 참여하지 않는 것은 예의가 아니였다. 신파치 군과 리더는 그가 죽었을 리 없다 하였다. 그리 강인한 남자였다면, 양이지사에 들어왔어도 한 건 하였을 텐데. 왜 진작 알지 못했을까. 자신의 꽃을 토하는 병 또한 5년을 꼬박 찾아도 원인도, 치료 방법도, 심지어 병명조차 알 수가 없었다. 아아, 하지만 어째서일까. 5년 전, 그 날 이후로부터, 계속 가슴 한 칸이 허전한 것은.
카츠라의 앞에 한 남자가 나타났다. 또, 또 이름조차 기억나지 않는 남자였다. 이상하게도 이 남자랑 만나고 나면 아무것도 기억나지 않았다. 분명히 만났었던 것 같은데, 만났다는 사실조차 잊어버리고는 했다. 그러나 이 남자와 만나고 나면, 카츠라의 병은 더 심해졌다. 그리고 이 남자는 카츠라에게 하나를 부탁했다. 과거에 양이전쟁에 참전했던 천인 중 하나. 엔미, 를 찾아달라고.
카츠라가 그곳에 도착한 것은 이미 늦은 후였다. 그저, 앉아 있는 누군가가, 아니, 사카타 긴토키. 그가 보였다. 바보같은, 남자야. 손발이 후들후들 떨렸다. 어찌하여, 어찌하여 이 감정을 잊어버리고 있었는가. 대체 어떻게, 너의 모든 것을 잊어버릴 수가 있었는지. 어째서 내가 이리도 널 사랑한다는 마음을 잊어버릴 수가 있었지. 카츠라는 그대로 긴토키를 향해 다가갔다.
"긴토키, 긴토키...일어나 보게. 일어나서, 바보같은 눈을 뜨고 날 봐 주게. 내 얼굴을 보아 주게. 네 녀석이 해 준 고백에 다시 답을 할 기회는 주어야 할 것이 아닌가."
긴토키, 엔미의 얼굴은 놀랍도록 평온했다. 그리도 평안하게 눈을 감은 긴토키의 얼굴에 빗물이 내려왔다. 툭. 투툭.
"일어나 보게. 일어나서 날 보아 주게. 자네를, 사랑한단 말일세...긴토키. 긴토키, 긴토키...나를, 자네를 잊어버려 버린 나를 용서하게. 용서할 수 있다면 용서해 주게. 처음에 자네의 고백을 거절해 버린 죄를 씻을 수 있다면 내, 뭐든지 할 테니. 제발."
카츠라는 긴토키에게 천천히 입술을 갖다 대었다. 이미 온기는 하나도 느껴지지 않는 입술이였다. 그런데도, 입을 맞추어 주었다. 자신이 영원토록 사랑하는 남자를 위해서.
"이젠 편안히, 눈을 감게나."
카츠라는 긴토키를 눕힌 후, 가슴에 보라색 장미꽃을 놓아 주었다. 카츠라의 눈에서는 눈물이 떨어졌다. 하늘에서는 비가 내렸다. 마치 그 날 처럼. 하늘은 잿빛으로 물든 얼굴로 울었다. 그 날 이후로 카츠라는, 더 이상 꽃을 뱉지 않았다.
카츠라 코타로는 배신당했다. 동료에게, 친구에게, 한 때 같이 싸웠던 친우가, 타카스기 신스케가 그의 등을 돌리고 떠나갔다. 연민의 마음이 있는 것은 아니였다. 그렇다고 그를 완벽히 떠올리지 않을 수는 없었다. 카츠라는 본디 동료의 배신에 누구보다 상처받는 남자였다. 단지, 태연한 듯이 아무렇지 않은 얼굴로 무표정을 짓고, 웃음을 지었다. 감정을 망각하기 시작한 것은 마음에 크나큰 상처가 생긴 후였다. 카츠라 코타로는 망가지기 시작했다.
카츠라는 한때 그 남자를 사랑했다. 며칠 전, 그가 돌연 고백을 해 왔다. 은발의 천연파마를 가진 동태눈의 사내는 누구보다도 올곧은 마음을 지녔다는 것을, 카츠라는 잘 알았다. 사카타 긴토키는 카츠라 코타로에게 말했다. 사랑해, 즈라. 잠시 멈칫했다. 마음도, 동작도. 그러나 카츠라는 더 이상 긴토키를 사랑하지 않았다. 그가 긴토키를 사랑했던 것은 이미 과거의 이야기였다.
"미안하네, 긴토키."
긴토키에게 이 이상은 말해줄 수 없었다. 자신을 사랑한다 말해준 남자는 쓸쓸히 뒷모습만 남긴 채로, 새벽을 향해 사라져 갔다.
카츠라가 처음 긴토키에게 느낀 것은 동경이였다. 소싯적부터 자신은 언제나 혼자였다. 혼자서 모든 것을 이겨낼 수 있고 모두를 지킬 수 있는 강한 지도자가, 사무라이가 되자. 카츠라가 옛적부터 가지고 있던 단 하나의 신념이였다. 신념 하나를 가지고 검을 휘둘렀다. 후욱, 후욱. 어린아이가 휘두르는 검 치고는 꽤나 묵직한 소리였다.
"하아, 하아, 하아. 1278! 1279!"
강해져야만 해. 강해져서 모두를 지켜야만 해. 지도자는 언제나, 가장 겁쟁이여야만 해. 누군가가 나를 뛰어넘어, 내가 소중한 것을 지키지 못해서는 안 돼. 모두를, 지킨다.
"한 판!"
"즈라, 너 무슨 일이냐? 졌잖아. 거 참. 무슨 일 있냐? 아까 보니까 검 휘두르는 것도 이상하던데."
"즈라가 아니다. 카츠라다! 네 알 바가 아니다, 긴토키."
긴토키가 비아냥거리며 카츠라에게 다가갔다. 쇼카손주쿠 서당. 저마다 자신의 무사도를 가지고 앞으로 나아가는 서당이였다. 긴토키도, 카츠라도, 타카스기도. 전부 이 곳에서 배운 동문이였다. 항상 붙어다니던 셋이였지만, 셋이 생각하는 것은 전부 달랐다. 그러나 단 한 가지, 같은 것이 있었다면, 서로를 믿고 의지하는 마음이였다. 긴토키는 잠시 카츠라를 빤히 바라보더니, 이내 슬쩍 다가갔다.
"즈라. 한 판 할까? 내가 있을 때에는 그냥 친구로 있어도 된다고 했잖아."
"..."
카츠라는 천천히 고개를 돌리고서는 가만히 긴토키에게 초점을 맞추었다. 그래, 그랬었지. 그래서 내가 널 좋아했었지. 그 때부터 계속. 처음 네가 나에게 그냥 즈라로 있어도 된다고 해도 된다고 말해주었을 때부터. 카츠라는, 아니, 즈라의 입꼬리가 살짝 올라갔다.
"좋다, 긴토키. 지금 이 순간만큼은, 카츠라가 아니다. 즈라다."
"그래야 내가 아는 즈라지."
두 사람은 이내 검을 맞대었다. 30분에 걸친 대련에서, 승자는 없었다. 단지 둘은, 계속 웃고 있었을 뿐이였다. 지금 이 순간이 가장 행복하다는 듯이.
카츠라는 긴토키를 절대적으로 신뢰했다. 전쟁 전부터도, 전쟁이 끝나고 나서도. 옛적에 사랑했던 남자라 하더라도, 지금은 사랑하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카츠라는 긴토키를 믿고, 언제나 동료라고, 친구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사모한다는 감정과는 사뭇 달랐다. 그렇게 생각했던 어느 날, 비가 내렸다. 주르륵, 누군가의 눈물이 하늘에서 떨어졌다. 누구의 눈물일까, 카츠라는 하염없이 하늘을 바라보았다. 잠시 긴토키에게라도 가 볼까. 카츠라는 외출 준비를 끝마치고 거울을 바라보았다. 좋아, 완벽해. 마지막으로 점검하고서는 이내 발걸음을 돌리려 하던 참이였다. 그런데, 이상한 일이였다. 분명히 아까까지만 해도 선명했는데.
"내가, 어디를 가려고 했더라."
그 순간이였다. 갑자기 목구멍이 막히더니 기침이 났다. 콜록, 콜록. 콜록. 카츠라는 본능적으로 눈을 꼭 감고 입가를 손으로 틀어막았다. 어릴 적부터 감기는 물론이거니와 기침이나 콧물이 난 기억조차도 없었던 카츠라이기에 더욱 기묘한 일이였다. 거기에다가 다른 일로 기침이 날 리도 없었다. 카츠라는 눈을 슬며시 뜨면서 자신의 입가를 가렸던 손을 보았다. 카츠라의 눈동자가 살짝, 흔들리기 시작했다.
"꽃...?"
카츠라가 토했던 것은 침도, 피도 아닌 보라색 장미였다. 이게 무슨 얼도당토없는 일인가. 자신이, 몸에서, 꽃을 토했다. 그것도 어디로 가야 하는지 기억하지도 못하는 장소에 가려다가 꽃을 토했다. 보라색, 장미. 카츠라는 빗물로 얼룩진 이 날을 잊을 수 없었다.
누구더라. 전에는 자신이 너무나도 신뢰하던 남자가 한 명 있었던 듯 했다. 그게 누구였더라. 옷도, 머리도, 이름도 기억나지 않았다. 얼굴도, 목소리도, 손의 감촉마저도 아무것도 떠올릴 수 없었다. 누구였었지. 간혹 가다가 안경을 쓴 소년과 말끝에 해를 붙이는 이국적인 소녀가 자신을 향해 인사했었다. 그럴 때마다 카츠라는 인사해 주었다. 오랜만에 보는구려, 신파치 군. 즈라가 아니다. 카츠라다! 리더, 잘 지냈는가? 그럴 때마다 그들은 말하고는 했다. 카츠라 씨, 요즘은 [ ]씨를 만나서 잘 안 오시네요? 즈라, 너 요즘 왜 [ ] 사무실에 뜸하냐, 해? [ ]쨩이 너 보고싶어 한다, 해. 엘리자베스도 팻말로 보여주고는 했다. 카츠라 씨, [ ] 씨가 찾아오셨는데 어떻게 할까요? 카츠라 씨, 요즘 [ ] 씨에게 잘 안 가시네요. 그들의 말을 들어 보면, 분명 자신이 굉장히 잘 아는 사람이였을 것이다. 그러나 이 대화는 자신이 꽃을 토한다거나, 그들이 먼저 가버린다거나, 진선조 대원들이 자신을 쫓아온다거나 하는 일들 때문에 금새 끝나버리고야 말았다. 언제나 그래, 곧 가야지. 아니, 오늘은 안 된다고 말하게. 안부 잘 전해 주게. 이런 식으로 답을 해 주면서, 아는 척을 해야만 했다. 그래야만 그들이 의심하지 않는다. 그러나 마음속에는 언제나 단 하나의 의문이 자리잡고 있었다.
그게, 누구인가?
카츠라가 보라색 장미를 내뱉는 횟수는 줄어들기는 커녕 점점 늘어나고 있었다. 언제나 콜록, 콜록. 기침할 때마다 보라색 장미가 입 속에서 나왔다. 이 정도면, 자신의 몸속은 아예 보라색 장미로 가득 찬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조차 들 정도였다. 그러던 어느 날이였다. 카부키쵸의 한 남자가 사라졌다. 안경의 소년과 중국풍 소녀도, 엘리자베스도, 카부키쵸 전체가 그 남자를 찾았다. 카부키쵸 정도 규모에 소문이 자자한 남자이면 자신이 모를 리가 없었다. 자신도 이 남자를 찾아야만 할 것 같았다. 그러나 이름도 모르는 남자를 어찌하여 찾을 수 있겠는가. 결국 한심한 자신은 입을 열어버리고 말았다.
"이런 상황에 미안하네만, 자네들이 찾는 그 남자가 대체 누구인가?"
그 남자가 사라진 이래, 5년이 지났다. 자신은 여전히 그가 누구인지 기억하지도 못했다. 꽃을 토하는 병은 점점 더 심해졌다. 소문으로 그 남자는 죽었다고 했다. 누군지도 기억하지 못하는 남자의 장례식에 참석하고 명복을 빌어 주었다. 물론 예의상 참여하지 않는 것은 예의가 아니였다. 신파치 군과 리더는 그가 죽었을 리 없다 하였다. 그리 강인한 남자였다면, 양이지사에 들어왔어도 한 건 하였을 텐데. 왜 진작 알지 못했을까. 자신의 꽃을 토하는 병 또한 5년을 꼬박 찾아도 원인도, 치료 방법도, 심지어 병명조차 알 수가 없었다. 아아, 하지만 어째서일까. 5년 전, 그 날 이후로부터, 계속 가슴 한 칸이 허전한 것은.
카츠라의 앞에 한 남자가 나타났다. 또, 또 이름조차 기억나지 않는 남자였다. 이상하게도 이 남자랑 만나고 나면 아무것도 기억나지 않았다. 분명히 만났었던 것 같은데, 만났다는 사실조차 잊어버리고는 했다. 그러나 이 남자와 만나고 나면, 카츠라의 병은 더 심해졌다. 그리고 이 남자는 카츠라에게 하나를 부탁했다. 과거에 양이전쟁에 참전했던 천인 중 하나. 엔미, 를 찾아달라고.
카츠라가 그곳에 도착한 것은 이미 늦은 후였다. 그저, 앉아 있는 누군가가, 아니, 사카타 긴토키. 그가 보였다. 바보같은, 남자야. 손발이 후들후들 떨렸다. 어찌하여, 어찌하여 이 감정을 잊어버리고 있었는가. 대체 어떻게, 너의 모든 것을 잊어버릴 수가 있었는지. 어째서 내가 이리도 널 사랑한다는 마음을 잊어버릴 수가 있었지. 카츠라는 그대로 긴토키를 향해 다가갔다.
"긴토키, 긴토키...일어나 보게. 일어나서, 바보같은 눈을 뜨고 날 봐 주게. 내 얼굴을 보아 주게. 네 녀석이 해 준 고백에 다시 답을 할 기회는 주어야 할 것이 아닌가."
긴토키, 엔미의 얼굴은 놀랍도록 평온했다. 그리도 평안하게 눈을 감은 긴토키의 얼굴에 빗물이 내려왔다. 툭. 투툭.
"일어나 보게. 일어나서 날 보아 주게. 자네를, 사랑한단 말일세...긴토키. 긴토키, 긴토키...나를, 자네를 잊어버려 버린 나를 용서하게. 용서할 수 있다면 용서해 주게. 처음에 자네의 고백을 거절해 버린 죄를 씻을 수 있다면 내, 뭐든지 할 테니. 제발."
카츠라는 긴토키에게 천천히 입술을 갖다 대었다. 이미 온기는 하나도 느껴지지 않는 입술이였다. 그런데도, 입을 맞추어 주었다. 자신이 영원토록 사랑하는 남자를 위해서.
"이젠 편안히, 눈을 감게나."
카츠라는 긴토키를 눕힌 후, 가슴에 보라색 장미꽃을 놓아 주었다. 카츠라의 눈에서는 눈물이 떨어졌다. 하늘에서는 비가 내렸다. 마치 그 날 처럼. 하늘은 잿빛으로 물든 얼굴로 울었다. 그 날 이후로 카츠라는, 더 이상 꽃을 뱉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