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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긴츠라 / 풀렸다 / 15금 ]

띵대댕 2016. 2. 28. 23:06
  [ 긴츠라 / 풀렸다 ]

  15금.



  "긴토키."

  새벽처럼 일어나는 놈 같으니라고. 긴토키는 체 다 뜨지도 못한 눈을 꿈벅꿈벅 깜박이며 기지개를 폈다. 어제 열심히 몇 병을 걸쳤더니 제도 모르는 사이에 집에 들어와서 잠을 자게 된 모양이였다. 설마 누군가와 일을 저질렀다거나, 그런 것만 아니면 좋겠는데. 긴토키는 자신의 몸이 나체라는 것을 자각했다. 이것은 아마도 제 연인과 한 판 하다가 벗은 것이렸다. 옷도 방 안에 있었고, 풀려서 바닥에 널부러진 넥타이도 보였다. 휴대폰 알람 소리도 울렸던 것 같은데, 전혀 자각하지도 못했다. 꽤나 고약하게 술을 마셨는지, 방 안에는 술냄새가 가득했다. 분명히 그는 술을 마시지 않았을 터였고, 자신만 술을 마신 채 헤이하게 들어왔을 텐데. 어차피 오늘은 근무하는 날도 아니고 하니 제대로 마셨던 것이였으니, 긴토키는 한시름 놓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편한 추리닝으로 갈아입고 눈곱도 손가락으로 대충 떼고 나가 보았더니 시간은 이미 12시 가까이였다. 하아, 진짜 일은 안 쳤으려나. 긴토키는 얼굴을 짚었다가 앞머리를 한번 쓸어넘겼다. 아직 연락도 확인하지 못 했는데. 이 놈이 불러서 냅다 나온 것이다.

  "왜 불렀는데, 즈라."
  "즈라가 아니라 카츠라다. 술이나 마시고 오고. 고약한 놈."

  역시. 이럴 줄 알았다. 이미 즈라, 그러니까 카츠라의 잔소리는 예정된 이야기였다. 술을 마시고 오면 그 다음날 아침에는 언제나 잔소리 잔소리 잔소리. 술을 너무 많이 마셔서 집을 엉망으로 만들었다거나 아니면 술냄새가 진동해서 냄새가 고약하다는 등의 이야기도 있었다. 오늘처럼 술을 너무 많이 마시고 와서 어쩌다 보니 일을 쳤다는 식의 이야기도 있었다. 카츠라의 시선은 긴토키에게로 향했다. 스타킹을 신고 있었다. 그러고 보니, 어제 무슨 이벤트를 한다면서 한껏 꾸미고 여장하고 나갔었다. 여장 이벤트, 라고 했었던가. 그런데 즈라가 오늘따라 조금 이상해 보였다. 어디 아픈가, 빈혈? 아니, 빈혈은 아닐 터인데. 감기? 그것도 아니야. 즈라는 감기에 안 걸려. 끝내 긴토키는 본인에게 직접 들어보기로 결정하였다.

  "머리가 아파."
  "머리는 왜 아픈데. 허리는 안 아프고?"
  "아니. 계속 이상한 것들이 생각나."
  "술 마신 건 아니고?"
  "내가 너인 줄 알아? 나는 술 안 마셔."

  사실이였다. 즈라는 술을 거의 마시지 않았다. 마시는 일이 생겨도 한 잔을 넘어가는 일이 없었다. 간혹 가다가 몇 잔을 마시는 경우도 있었지만, 그건 아주 가끔의 이야기였다. 가끔 긴토키는 아쉬움을 느끼고는 했다. 제 애인이 술을 마시지 않아 평소와 다른 모습을 볼 수가 없어 놀릴 수가 없기 때문이리라.

  "꿈을 꿨어."

  즈라가 꿈이라고 했다. 꿈? 긴토키가 되물었다. 카츠라는 고개를 끄덕이며 입을 열었다.

  "전쟁이였어. 너랑 내가 검을 들고서는 앞에 있는 것들을 베고 또 벴어. 그런데 적들을 베어넘기다가 내가 뒤에 있는 적들을 못 봐서, 네가 대신 그 놈을 베고 연이어 공격을 받았어. 그리고 크게 다쳤어. 타카스기와 사카모토도 함께 있었는데, 네가 위급한 상황이였어."

  전쟁이라고 했다. 적을 베어넘긴다. 마치 저의 학생 때의 시절인 것 같았다. 그 때에는 사카타 긴토키라고 하면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로 긴토키는 동네의 골목대장이자 공포의 대상이였다. 어릴 적부터 귀신이라 불렸고, 학생이 되어서도 귀신이라고 소문이 자자했었다. 동네 사람들은 긴토키를 이렇게 불렀다. 백야차, 라고. 카츠라도 그것을 알았다. 백야차라고 불리기 수 년 전에 카츠라와 긴토키는 만났다. 초등학생 때에, 카츠라와 타카스기가 전학을 감으로서 만났다. 타카스기 놈은 마음에 들지 않았었다. 그러나 즈라는 그 놈과는 달라, 친절하고, 아름답고, 놀라울 정도로 멍청하기도 했다. 그리고 고등학생 정도 되니 사카모토 그 바보놈이랑 만나더라. 공포의 대상이자 동경의 대상인 네 명은 지금은 둘 빼고는 뿔뿔이 흩어져서 살고 있었다.

  "네가 맞아. 왜냐하면 다른 사람들이 널 그렇게 불렀어. 백야차, 라고."
  "그러면 너는 광란의 귀공자였고?"

  카츠라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침묵은 곧 긍정. 아마 즈라가 꾸었던 꿈은 그저 단순한 꿈일 것이라고 긴토키는 생각했다. 아니면 평행우주와 같은 다른 세계임이 분명했다.

  "그래서...네가 며칠동안 깨어나지 않았어. 너무 불안했어. 네가 술 마시고 오기 전까지 꾸던 꿈이였는데, 네가 멀쩡하게 그런 짓을 하는 걸 보고는 안심했어."

  그리고 네가 이렇게 멀쩡하게 자는 모습을 보고 걱정도 덜었고. 직접 꿈을 들어보니 웃기기 그지없었다. 이런 일들이 다른 세계나 과거에서는 실제로 일어났던 것들이 아닌가. 몇 번인가, 너와 내가 다른 곳에서 함깨하는 꿈들을 꾼 적이 있어, 긴토키. 요상한 첫만남이나, 같이 서당을 다녔던 것. 그리고 심지어는 성인이 된 이야기들도. 몇 번이나 이런 꿈들을 꿨단 말이지. 어째서 모르고 있었을까. 긴토키는 제가 바보같기만 했다. 즈라가 이런 꿈을 꾸고 이런 고민들을 하고 있었는데. 어쩌면 그냥 바보짓을 하는 것도 좋을지도 몰랐다. 그러면 즈라가 걱정하지 않게 할 수 있었을 테니까. 그래도 어쩔 수가 없었다. 긴토키가 원하던 것은 즈라를 보듬어주는 쪽이였지, 이렇게 아무것도 모르고 안심시키는 것이 아니였으니까. 긴토키는 울적해진 기분에 화제를 다른 곳으로 바꾸고자 입을 열었다.

  "즈라, 그런데 너 스타킹은 안 벗냐? 어제 여장한다고 입은 거 아니였어?"
  "밤에 네가 벗지 말랬어. 오늘 한 판 더 한다고. 바보야, 그렇게도 나한테 자국들을 남기고 싶었어?"

  너랑 사귀고 내 몸에 얼마나 많은 상처들이 생겼는지 알아? 잘못했습니다...긴토키는 카츠라의 앞에서 무릎을 꿇었다. 잘못했습니다, 용서해 주세요...그렇다. 카츠라는 긴토키가 술김에 한 말을 진심인줄로만 알고 스타킹을 계속 신고 있었던 것이였다. 동거 생활도 어느덧 몇개월 째였다. 스타킹에다가 제 말을 완벽하게 믿고 있었다. 긴토키가 소소하게 바랐던 것. 즈라가 좋아하지 않을지도 몰랐다. 그러나 한번쯤은, 이렇게 해도 괜찮지 않아?

  "즈라. 우리 차라도 마실까? 내가 끓일 테니까."
  "별일이네. 좋아."

  됐어, 된 거야. 이제 곧 할 수 있어, 볼 수 있어. 긴토키의 심장이 덜덜 떨리는 듯 했다. 손이 떨렸고, 심장이 쿵쾅댔다. 이제, 된 거야. 즈라도 분명 좋아할 거야. 긴토키는 자신의 차를 타고, 카츠라의 차를 탔다. 그리고 찻잔에 살딱 무언가를 넣었다. 그리고서는 되었다는 듯이, 카츠라에게 차를 내밀었다. 마셔. 그리고 카츠라는 홀짝, 하고 마셨다. 다 마셔줘, 즈라. 긴토키도 찻잔에 입을 대고서는 살짝 마시고서는 기다렸다. 이내 카츠라의 반응이 보였다. 갑자기 얼굴을 붉히고서는 표정이 일그러져 갔다. 계획 성공. 카츠라가 붉어진 얼굴로 침을 흘리며 긴토키에게 매달렸다.

  "긴토키, 이게 무슨...!"
  "즈라, 미안해. 내가 꼭 해보고 싶어서."

  긴토키와 카츠라가 홀짝이고 마셨던 차. 두 사람의 찻잔에는 양쪽 다 살짝의 약이 들어가 있었다. 긴토키가 직접 탄 약이였다.

  "ㄱ, 긴, 토키. 긴토키. 긴토키..."

  카츠라가 점점 더 세게 자신의 몸을 잡았다. 이제는 침까지 흘리고 있었다. 몸이 후들후들 떨리고 있는 즈라의 모습은 긴토키에게 다른 의미로 충격이였다. 즈라가 보았던 꿈의 세계의 나도 이런 마음을 품고 이런 짓을 했을까. 긴토키는 문득 궁금해졌다. 미안해, 내가 나쁜 놈이라서. 긴토키의 얼굴도 살짝 붉어지기 시작했다.

  "나, 너무나도 흥분되는 것 같아, 즈라. 한 번, 한 번만 말해봐. 범해 달라고. 이런 대낮부터 범해 달라고 말이야."
  "얼른, 얼른 침대로...침대로 가 줘, 제발, 제발 부탁이야, 긴토키, 흐으.."

  거의 울상이 된 즈라의 얼굴을 바라보던 긴토키의 입꼬리가 올라갔다.










  "즈라, 좋아? 좋아서 죽을 것 같지?"
  "하, 흐, 긴토, 키...흐...이런 일을 직접 할 줄, 은, 몰랐어...그것도 하필이면, 하필 오늘...흐..."

  긴토키가 살짝 비웃으며 카츠라의 머리카락을 쓰다듬었다. 카츠라가 신었던 스타킹은 찢어져 버려졌고, 대신에 몸 군데군데에 상처만이 남았다. 긴토키는 카츠라에게 여러가지 해 주었다. 목 쪽에 진한 자국을 남기고, 배 쪽에도 남기고는 했다. 허리에도 무리가 가지 않을 정도로만. 즈라와 입술을 맞대는 긴토키는 정말, 최고였다. 이런 일도 나쁘지 않구나, 생각할 정도로. 내가 이런 일을 한 것이 후회가 되지 않을 정도로.


  오늘, 정말 최고로 흥분돼, 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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