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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타카츠라 ] 인생은 엔조이

띵대댕 2016. 1. 23. 22:52


"나 왔다."
"오늘은 조금 늦었군."
"아아, 일이 남아서."

타카스기 신스케는 몇달 전부터 카츠라 코타로와 동거하고 있었다. 정말 지긋지긋한 인연이라고 생각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신기한 일이였다. 이 놈과 이렇게 붙어있는 일 자체가. 둘은 어릴 적부터 같은 동네에 사는 친구였던 데다 중학교, 고등학교도 같았으며, 심지어 간 대학은 달라도 같은 동네에 살 정도로 질긴 인연의 사슬에 묶여 있었다. 동거한지는 어느덧 3달째. 이제 슬슬 서로에게 익숙해질 때도 되었을 시기였다.

"일도 적당히 해라. 아프면 내가 네 놈을 병원에 데려가야 하지 않나."

타카스기는 도대체 이 놈은 자신을 걱정하는 건지, 아니면 싫어하는 건지 모르겠다고 생각했다. 원체 정신상태를 알 수가 없는 놈이니 생각을 읽기가 더욱 힘들었다. 타카스기에게 카츠라 코타로라는 남자는 어떻게 보면 재앙이였고, 또 어떻게 보면 한 줄기 햇빛이였다. 타카스기는 직장을 구한지 얼마 되지 않은 초보였다. 언제나 좋은 양복을 입고 나가고, 넥타이를 매고, 열심히 일했다. 심지어 주말에도 나가는 일이 많았다. 그러면서도 그렇게 힘들거나 화나는 듯한 일은 없었으니, 카츠라는 그저 신기할 따름이였다. 그에 비해 카츠라는 아직 직장은 구하지 못하였으나, 여러 곳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며 착실하게 월급을 쌓아 놓았다. 자신의 말로는 추후의 생활에 대비하기 위해서라고 하였으나, 타카스기가 보기에는 그것도 아니였다. 물론 그가 자신의 통장에 쌓아두는 돈은 적은 양이 아니였다. 그러나 그가 돈을 모으는 이유는 바로 자신이 사고싶은 것들을 다 사기 위함이였다. 두 사람이 동거하는 집에는 타카스기의 넥타이와 양복들, 요구르트, 그리고 카츠라의 잡동사니(타카스기가 말하기를)들 뿐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였다.

"안 아플 테니까 걱정하지 마라. 병원도 혼자 못가는 줄 아나 보지."

카츠라는 조용히 고개를 돌렸다. 둘이 애용하는 식탁에는 그가 타카스기를 위해 만들어놓은 음식들이 올려져 있었다. 본래 타카스기같은 성격은 자신이 좋아하는 성격과는 거리가 멀었다. 아니, 싫어한다고 단정지을 수 있었다. 카츠라는 타카스기가 싫었다. 그래도 이 놈은 어찌 되었든 자신의 오랜 친구였고, 지금 이렇게 동거하고 있는 처지였다. 타카스기가 싫든 말든, 자신에게는 이 놈과 친하게 지내는 수밖에 없었다. 안 그러면 어렵게 지내는 생활마저도 파탄날 것이 분명했다. 그는 잠시동안 타카스기를 보았다. 저 많은 넥타이들은 다 어디서 사는 걸까, 애초에 저것들을 살 돈은 있는 건가, 라고 생각하는 것도 무리가 아닐 만큼 타카스기는 많은 넥타이를 가지고 있었다. 얼마나 많냐 하면, 카츠라가 한 때 타카스기의 취미가 넥타이를 사는 것인가 진지하게 고민한 적도 있었을 정도였다. 그래서 카츠라는 그에게 물어보았던 적이 있었다.

"타카스기, 너의 취미는 넥타이 수집인가?"
"아니. 혹시 내 취미가 넥타이 수집인 줄 알았던 건가? 왜, 나의 넥타이가 너무 많아서?"

카츠라는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었다. 그러나 되돌아온 타카스기의 대답은 자신이 생각한 그런 것보다도 훨씬 괴기한 이유임은 분명하였다.

"그저 매일매일 똑같은 넥타이를 하면 지루하지 않겠나? 그게 수집의 이유다. 그러는 네 놈은 취미가 뭐지? 잡동사니 수집?"
"잡동사니 아니다, 애완동물들의 귀여움을 나타내는 것들이다! 개와 고양이의 귀여움을 모르다니, 네 놈도 참 불쌍하군."

이런 식으로 끝났던 대화였다. 그 때, 타카스기는 자신의 취미는 알아서 뭐 하려던 걸까, 라고 생각했던 카츠라는 그가 아무짓도 하지 않는 것을 보고서는 마음속으로 깊이 안도하였다.

"즈라, 오늘 밤에 무언가 할 것이 있나?"
"즈라 아니다, 카츠라다. 왜 물어보는 거지? 아르바이트라면 없다만."
"그렇다면 오늘, 한번 하지."

카츠라는 순간 당황해서 얼굴을 붉혔다. 내가 이 놈과 뭘 한다는 거지. 대체 뭘 한다는 건지, 이해가 가지 않았다.

"ㅁ, 뭘 한다는 거냐, 네 놈."
"이러면 안 되는 게 아닌가, 즈라. 내가 뭘 위해서 이렇게 늦게 들어오는 것을 싫어하지도 않고, 굳이 네 놈과 동거를 했다고 생각하는 건가."
"ㄴ, 네 놈. 무슨...?"
"내 방으로 와라. 내 취미를 알려주도록 하지. 나의 이 넥타이는, 오늘만큼은 너를 위한 거다."

그 의미가 무엇인지 깨닫고는 카츠라는 당황스럽기 짝이 없었다. 대체 이 놈의 정신상태는 어찌 되어먹은 것인지, 물론 자신도 타카스기와는 잘 지내려 노력하였고, 나름 타카스기에게 잘 대해주는 편이라 생각하였다. 헌데 이것은 예상을 벗어나도 한참 벗어나, 대기권을 뚫을 정도로 벗어나지 않았는가. 카츠라는 타카스기가 자신에게 이런 마음을 품고 있을 줄은 꿈도 꾸지 못했다. 언제부터였을까, 타카스기가 자신에게 이런 마음을 품은 것은. 다시 생각해 본다면 어이없을 정도로 기묘한 일이였다. 몇 년을 함께 보냈음에도, 자신은 타카스기의 마음을 조금의 틈새만큼도 알아차리지 못했다. 어찌하여 자신은 이리도 바보같은 것인지.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카츠라가 최근 가장 자주 생각한 것은 타카스기에 관한 것이였다. 가장 많이 생각하였는데도 타카스기가 자신을 어떻게 생각하는지는 전혀 몰랐다. 그래서, 다시 한번 물어보았다.

"...언제부터 나를 사랑했던 건가, 타카스기?"
"처음 만났을, 그때부터."

아아, 그랬다. 바보같기도 하지. 처음부터 그는 자신을 사랑했다. 자신이 너무 바보같아서 울음이 다 나올 지경이였다. 그러나 이상한 일이였다. 분명히 자신이 너무나도 바보같아서 눈물이 나와야 하는데, 가슴 깊은 곳에서는 안도감이 들었다. 그때 카츠라는 깨달았다. 어찌하여 자신이 이 녀석이 이렇게 싫은데도 다른 곳으로 가기 싫었는지, 왜 안도감이 드는지 이해할 수 있었다.

나도, 언젠가부터 바보같이 이 녀석을 좋아하고 있었구나.

"...타카스기."
"준비가 되어있지 않다면, 괜찮다. 충분히 이해할 수 있으니. 분명 당황했겠지."
"아니...아니, 가지 마라. ...그런 것 따위, 처음이지만. 나도 너를 사랑한다는 말은 전하고 싶었다."

푸흣. 타카스기는 살짝 웃고서는 입을 열었다.

"이제 보니까 완전히 부끄럼쟁이로군."
"부끄럼쟁이 아니다!! 카츠라다!!"
"그렇다면 오늘, 한번 해 보지."

타카스기의 넥타이가 풀리는 것은 두 사람이 방으로 들어간지 채 몇분도 되지 않아 일어난 일이였다.

- f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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