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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히지츠라 & 사이츠라 / Again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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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는 당신에게 오늘만큼은 최고의 꿈을 선사할 수 있도록.
히지카타 토시로는 카츠라 코타로를 계속 지켜보고 있었다. 어릴 적부터 계속해서 홀로 카츠라를 지켜보았고, 어느 때가 되든 간에 언제나 마지막까지 그의 곁에 남았다. 유치원 동창인 어린 소년 둘은 경찰놀이를 하며 한 쪽은 범죄자가 되어 도망쳤고 다른 한 쪽은 경찰로 범죄자를 잡아라, 잡아라 하면서 쫓고 쫓기는 추격전이 벌어지는 경우가 일상이 되었다. 경찰이 꿈이였던 히지카타는 장난감 수갑까지 준비할 만큼 놀이에 열심히 참가했다. 다른 아이들도 신경쓰지 않았고, 둘은 옛적부터 함께 지냈던 친구이기 때문에 다들 당연하다고 생각했다. 언제나 이 놀이를 할 때면 카츠라는 발이 빨라 도망을 멀리멀리 가버려 항상 히지카타 쪽이 카츠라를 놓치고는 했다. 매일매일 먼저 기브업을 외치는 것도 히지카타였고, 먼저 뻗는 것도 히지카타였다. 유치원생 둘은 그렇게 차곡차곡 우정을 쌓아 갔다. 비가 올 것만 같은 어느 날, 히지카타와 카츠라가 내기를 했다.
"오늘, 네가 나를 잡으면 내가 너한테 하루동안 경찰님이라고 싹싹 빈다! 마요네즈는 서비스!"
이 말을 들은 히지카타는 당연하게도 죽기 살기로 카츠라을 쫓았다. 수갑을 들고서는 고래고래 소리쳤다. 거기 서, 멈추란 말이야! 카츠라도 이것을 알았는지, 오늘만큼은 절대 안 잡힌다는 심정으로 죽기 살기로 뛰었다. 내가 잡히라고 잡힐 것 같아? 몸에 남은 에너지로 소리를 치는 것조차 쉽지 않았다. 카츠라의 신출귀몰함에 히지카타는 결국 두 손 들고 바닥에 철푸덕 엎어졌다. 지쳐 쓰러진 채로 숨을 내쉬며 짜증을 내던 히지카타가 카츠라에게 물어보았다. 너는 어떻게 그렇게 도망을 잘 치냐? 도망? 별 거 없어. 많이 쳐보면 돼. 카츠라가 숨을 가쁘게 내쉬며 말했다. 히지카타는 바닥에 박은 얼굴을 돌려 카츠라를 바라보았다. 히지카타는 뭔가 이상함을 느꼈다.
"카츠라, 너 원래 땀이 그렇게 많이 났던가?"
"아니야, 이건 그저...읍."
히지카타는 바닥에서 일어나 카츠라의 이마에 손을 댔다. 땀이 차가워. 식은땀을 흘리며 웃으며 대답하던 카츠라가 히지카타에게서 벗어나더니 다른 곳에다가 토를 했다. 카츠라가 히지카타를 바라보더니, 슬쩍 웃었다. 난, 괜찮아. 그 순간, 카츠라의 동공이 풀리더니 그대로 바닥으로 곤두박질쳤고, 히지카타는 바로 뛰어가 선생님께 도움을 요청했다. 구급차가 유치원에 왔고, 다른 학생들은 전부 이 광경을 신기하다는 눈빛으로 구경하고 있었다. 의사 선생님, 카츠라는요? 괜찮은 건가요? 아마 괜찮을 거다. 하지만 아마 다시 이곳에 오지는 못할 거야. 히지카타는 단 한번도 카츠라의 손목에 채워주지 못한 장난감 수갑을 바라보더니, 주머니 속으로 넣고서는 다시는 꺼내보지 않았다. 어릴 적의 기억은 끝이 났다.
사이토는 카츠라의 병실에 과일 한 바구니를 챙겨오는 정성을 보였다. 사이토 시마루, 이제 대학생 1학년이 되었다. 학과는 카츠라와 같은 심리학과 쪽이였다. 항상 무서운 얼굴에 친구가 없었던 그가 심리학과에 온 것은 심리를 연구하면 친구들을 만들 수 있을 거라 생각했기 때문이였다. 병실에 누워 있던 카츠라는 사이토의 얼굴을 바라보더니 희미하게 웃었다. 후배에게 빌빌대는 꼴을 보이는 선배라니, 허망하기 그지없었다. 그로부터 몇 년째더라. 병원에서 이렇게 누워있지 않아도 항상 병원에 몇 시간동안 있어서 진찰받고, 수술받는 것이 일상이 되었다. 그래서 대학을 1년 다니고서는 끝내 그만두는 것과 휴학 사이에서 휴학으로 결정했고, 대학교 2학년인 그는 언제나 사이토에게 학과 이야기를 듣고는 했다. 사이토는 카츠라의 병실에 찾아와 여러가지 이야기를 했다. 친구를 만드려고 했는데 실패했다는 이야기, 친해지고 싶은 사람에게 웃어 주었는데 그 사람이 더욱 멀어졌다는 이야기, 고등학교 후배의 공부를 도와주는 이야기 등 카츠라를 즐겁게 했다. 가끔은 카츠라의 취향에 맞는 만담을 가지고 와서 카츠라를 웃겨 주기도 했고, 오늘처럼 과일이라던지, 그런 건강한 식품과 어서 나으세요Z와 같은 짧은 편지가 적힌 쪽지를 바구니에 넣어 병실 한구석에 놓아 주었다.
"왔어? 사이토."
아니야, 일단 또 다른 고비는 넘겼다고 했어. 수술도 잘 된 것 같고. 그거 다행이로군요. 이 후배는 말을 하지 않는 건지, 항상 마스크와 같은 것을 쓰거나 마스크를 쓰지 않아도 입을 열지 않고 공책에 말을 쓰고서는 말을 걸고는 했다. 그런 사이토의 특이함이 마음에 든 건지, 카츠라의 사이토에 대한 첫인상은 상당히 좋은 편에 속했다. 물론 카츠라도 사이토의 미소를 처음 본 날에는 오, 세상에. 쟤가 날 죽일 생각인가? 저건 사신의 미소잖아! 이런 생각을 했지만, 지금은 그런 의미가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기에 사이토의 미소에도 놀라지 않았다. - 물론 무서운 것은 어쩔 수 없었다. - 친절하지만 소심한 성격과 무서운 얼굴과 미소를 타고났기에 친구가 없던 그에게는 카츠라가 먼저 다가가 주었다.
1학년들이 처음 들어오는 날이였다. 사이토가 강의실에 들어왔을 때에는 이미 몇 자리 남아있지 않은 상태였고, 사이토는 어쩌다 보니 카츠라의 옆자리에 앉게 되었다. 그 날은 카츠라가 아직 입원하기 전이였다. 교수님의 강의를 듣다 보면 필기를 해야 하는데, 운도 지지리 없던 사이토는 하필 첫날부터 공책만 들고 오고 펜은 가지고 오지 않았었다. 사이토를 주시하고 있던 카츠라는 그를 잠시 바라보더니, 노트를 살짝 찢어 그에게 필담을 건넸다. 펜, 하나 빌려줄게. 강의 끝나고 다시 줘. 그렇게 말을 튼 사이였던 둘은 대학에서 같이 다니며 매점에도 다니고, 서로의 자취방에도 놀러가고는 했다. 그로부터 한달 가량 후에는 사이토가 카츠라의 집에 놀러간 적이 있었다. 카츠라가 비상시를 대비하여 알려주었던 비밀번호가 있었으나, 그것을 누르고 싶지는 않았다. 띵동, 초인종이 경쾌하게 울렸다. 카츠라 씨, 저 왔는데요Z. 그런데 카츠라가 몇 분 동안 말이 없었다. 평소라면 제깍제깍 문을 열어주었을 그가 몇 분 동안이나 말이 없더니, 조급함을 느낀 사이토는 서둘러 카츠라가 알려주었던 그의 집 비밀번호를 누르고 자취방 안으로 들어가 쓰러진 채로 아파하고 있는 카츠라를 직접 병원으로 데려갔다. 사이토는 그 날, 카츠라가 옛적부터 고질적인 병이 있었고 그것을 약화시키기 위해 주기적으로 검진을 받고 약을 받아 먹는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카츠라가 입원한 이후, 사이토는 거의 매일 그의 병실에 들렀다. 카츠라의 병실의 여러 화분들과 몸에 좋다는 음식들은 전부 사이토가 카츠라에게 선물한 것이였다. 하루는 카츠라가 사이토에게 이런 선물들은 과분하다며, 더 이상 선물은 들고 오지 마라고 한 적이 있었다.
사이토는 그 말이 써진 공책을 한 장 떼 카츠라의 손에 쥐어 주고서는 오늘은 이만 가보겠다며 병실을 나갔다. 카츠라는 병실의 문을 바라보다가 눈을 감으며 중얼거렸다. 어서 낫고 싶어.
카츠라 코타로의 하루하루는 무의미했다. 병실 안에서 지겹기만 한 시간을 보내다 보면 별 생각을 다 하다가 하루가 지나가고는 했다. 사이토가 오고서는 달라진 나날들도 있었고, 카츠라는 그의 말들에 진심으로 즐거움을 느꼈고, 행복을 느꼈다. 그러나 무언가 부족하다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었다. 차라리 내가 예전부터 아프지 않았더라면, 그러면 행복한 시간 속에 잠들 수 있었을 텐데. 창가로 본 잿빛 하늘은 금새라도 비가 내릴 듯한 모양새였다. 옛적 생각이 나서, 마음속에 간직하고 있던 조그마한 편지지를 꺼냈다.
'히지카타 토시로가, 카츠라 코타로에게.'
어떻게 잊을 수 있을까, 너를. 한번만 더 너와 함께 경찰놀이를 다시 하며 즐겁게 뛸 수 있다면. 그냥 그 날 잡혀줄 걸 그랬다. 이럴 줄 알았더라면, 그쯤 내기 한번 져줄 걸 그랬다. 다시 함께 놀고 싶어, 히지카타.
올 것이 왔다. 카츠라는 진단을 받았다. 이제 길어야 2달 남은 삶, 병의 증세도 거의 나타나지 않을 테니 최대한 즐겁게 보내라며 퇴원을 시켰다. 무슨 병인지는 몰랐다. 그저 태어났을 때부터 안고 살았던 병이다. 아무도 이 병이 무슨 증세를 가졌는지도 모르고, 세상에서 혼자만 앓는 병이였다. 대학은 아직 휴학 상태였다. 사이토에게는 일부러 알리지 않았다. 자신의 생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것을 알면, 분명 가장 슬퍼할 사람은 사이토 시마루였다. 그렇기에 그에게는 거짓말을 했다. 해야만 했다.
"응. 몇 달 동안은."
그렇게 같이 놀았다. 언제적에 카츠라가 사이토에게 말했던 것을 그는 기억하고 있었는지 함께 바다에도, 계곡에도, 도시에서 가장 높다는 건물에도 가보고 전망을 보거나 여러 군데 돌아다니고는 했다. 놀이공원에서 같이 노는 날도 있었다. 물론 주말이나 사이토가 수업이 있지 않은 날만 가능했었다. 그리고 그 날은 사이토와 카츠라가 숲속을 걸어다닌 뒤 다시 돌아온 날이였다.
"그래, 난 얼른 잘게."
사이토를 보냈다. 통보받은 이래로 한달가량이 지났다. 가고 싶었던 곳들은 사이토와 함께 전부 다녀왔다. 카츠라는 도시가, 특히 차가 싫었다. 특히 트럭이 싫었다. 그래서 사이토에게는 바다나 산, 계곡 같은 곳에 가자고 말한 경우가 많았다. 그저 한적한 시골과도 같은 곳에서 계속 살고 싶었다. 가만히 있다가 자취방 안의 앨범을 스윽 꺼내어 보았다. 가장 돌아가고 싶은 유치원 시절의 사진들이 가득했다. 히지카타, 히지카타. 히지카타. 앨범을 끌어안고서는 눈물을 흘렸다. 사진이 점점 젖어 간다. 추억이 젖어만 갔다.
"히지카타, 어디 있어."
"여기 있어."
귀신과도 같은 그 목소리에 카츠라는 뒤를 돌아보았다. 히지카타? 그래, 나야. 히지카타, 히지카타, 히지카타. 정말 너구나. 카츠라는 히지카타에게 다가갔다. 너도 이제 어른이 되었구나. 나도 어른이야. 응, 알고 있어. 그 날, 네가 떠났던 날부터 계속 네가 보고 싶었어.
"여기에는 왜 왔어?"
"당연한 거 아니야? 범죄자를 잡으러 왔지."
하하, 하. 그렇구나. 결국 경찰이 된 거야? 히지카타. 응, 경찰이야. 히지카타는 카츠라의 손목을 잡더니 수갑을 채웠다. 지금이라면 갈 수 있을 것 같지 않아? 응, 갈 수 있을 것 같아. 네 옆에서 누울 수 있을 것 같아. 끌려 들어갈 것만 같아, 히지카타.
"꿈이 아니지?"
"아니야. 카츠라, 같이 가자. 나와 함께 있을 수 있도록."
"당연하지, 나는...아, 졸려. 히지카타, 잠시 한숨만 잘게. 지금 널 만났어...드디어, 만났어. 이제 편안한 마지막을 맞이할 수 있을 것 같아..."
수 년 전, 카츠라가 15세 때의 일이였다. 뉴스에 한 가지의 교통사고 사건이 방송되었다. 15세의 남중생이 트럭에 치여 숨졌다는 사건이였다. 그리고 그 사건은 신문에도 보도되었다. 그 당시로부터 6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그 신문을 카츠라는 줄곧 보관해 왔다. 그 사건은 모두에게 잊혀져 왔다. 그러나 카츠라는 그 사건을 영원토록 잊지 못했다. 그 사건의 제목은 이랬다.
[15세 남중생 히지카타 군, 트럭에 치여 안타깝게 목숨을 잃어]
사이토는 유성 하나를 보았다. 별똥별에 소원을 빌면 이루어진다고 했지. 사이토는 가만히 손을 맞댄 채 속으로 기도했다. 원하는 것은 없으니, 카츠라 선배의 병이 다 나았으면 좋겠어요Z. 카츠라 선배, 좋아해요. 선배가 다 낳으면 기도할 겁니다Z. 별똥별이 질 때에, 카츠라는 앨범을 꼬옥 안고 눈을 감았다. 앨범 사이에는 그가 줄곧 보던, 히지카타가 그에게 썼던 편지지가 한 장 있었다. 편지지에는 이렇게 써져 있었다.
[카츠라와 히지카타, 최고의 친구. 히지카타가, 카츠라에게. 나중에 나랑 사귀자, 카츠라. 좋아해.]
답장하지 못한 편지에는 눈물 자국만이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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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는 당신에게 오늘만큼은 최고의 꿈을 선사할 수 있도록.
히지카타 토시로는 카츠라 코타로를 계속 지켜보고 있었다. 어릴 적부터 계속해서 홀로 카츠라를 지켜보았고, 어느 때가 되든 간에 언제나 마지막까지 그의 곁에 남았다. 유치원 동창인 어린 소년 둘은 경찰놀이를 하며 한 쪽은 범죄자가 되어 도망쳤고 다른 한 쪽은 경찰로 범죄자를 잡아라, 잡아라 하면서 쫓고 쫓기는 추격전이 벌어지는 경우가 일상이 되었다. 경찰이 꿈이였던 히지카타는 장난감 수갑까지 준비할 만큼 놀이에 열심히 참가했다. 다른 아이들도 신경쓰지 않았고, 둘은 옛적부터 함께 지냈던 친구이기 때문에 다들 당연하다고 생각했다. 언제나 이 놀이를 할 때면 카츠라는 발이 빨라 도망을 멀리멀리 가버려 항상 히지카타 쪽이 카츠라를 놓치고는 했다. 매일매일 먼저 기브업을 외치는 것도 히지카타였고, 먼저 뻗는 것도 히지카타였다. 유치원생 둘은 그렇게 차곡차곡 우정을 쌓아 갔다. 비가 올 것만 같은 어느 날, 히지카타와 카츠라가 내기를 했다.
"오늘, 네가 나를 잡으면 내가 너한테 하루동안 경찰님이라고 싹싹 빈다! 마요네즈는 서비스!"
이 말을 들은 히지카타는 당연하게도 죽기 살기로 카츠라을 쫓았다. 수갑을 들고서는 고래고래 소리쳤다. 거기 서, 멈추란 말이야! 카츠라도 이것을 알았는지, 오늘만큼은 절대 안 잡힌다는 심정으로 죽기 살기로 뛰었다. 내가 잡히라고 잡힐 것 같아? 몸에 남은 에너지로 소리를 치는 것조차 쉽지 않았다. 카츠라의 신출귀몰함에 히지카타는 결국 두 손 들고 바닥에 철푸덕 엎어졌다. 지쳐 쓰러진 채로 숨을 내쉬며 짜증을 내던 히지카타가 카츠라에게 물어보았다. 너는 어떻게 그렇게 도망을 잘 치냐? 도망? 별 거 없어. 많이 쳐보면 돼. 카츠라가 숨을 가쁘게 내쉬며 말했다. 히지카타는 바닥에 박은 얼굴을 돌려 카츠라를 바라보았다. 히지카타는 뭔가 이상함을 느꼈다.
"카츠라, 너 원래 땀이 그렇게 많이 났던가?"
"아니야, 이건 그저...읍."
히지카타는 바닥에서 일어나 카츠라의 이마에 손을 댔다. 땀이 차가워. 식은땀을 흘리며 웃으며 대답하던 카츠라가 히지카타에게서 벗어나더니 다른 곳에다가 토를 했다. 카츠라가 히지카타를 바라보더니, 슬쩍 웃었다. 난, 괜찮아. 그 순간, 카츠라의 동공이 풀리더니 그대로 바닥으로 곤두박질쳤고, 히지카타는 바로 뛰어가 선생님께 도움을 요청했다. 구급차가 유치원에 왔고, 다른 학생들은 전부 이 광경을 신기하다는 눈빛으로 구경하고 있었다. 의사 선생님, 카츠라는요? 괜찮은 건가요? 아마 괜찮을 거다. 하지만 아마 다시 이곳에 오지는 못할 거야. 히지카타는 단 한번도 카츠라의 손목에 채워주지 못한 장난감 수갑을 바라보더니, 주머니 속으로 넣고서는 다시는 꺼내보지 않았다. 어릴 적의 기억은 끝이 났다.
사이토는 카츠라의 병실에 과일 한 바구니를 챙겨오는 정성을 보였다. 사이토 시마루, 이제 대학생 1학년이 되었다. 학과는 카츠라와 같은 심리학과 쪽이였다. 항상 무서운 얼굴에 친구가 없었던 그가 심리학과에 온 것은 심리를 연구하면 친구들을 만들 수 있을 거라 생각했기 때문이였다. 병실에 누워 있던 카츠라는 사이토의 얼굴을 바라보더니 희미하게 웃었다. 후배에게 빌빌대는 꼴을 보이는 선배라니, 허망하기 그지없었다. 그로부터 몇 년째더라. 병원에서 이렇게 누워있지 않아도 항상 병원에 몇 시간동안 있어서 진찰받고, 수술받는 것이 일상이 되었다. 그래서 대학을 1년 다니고서는 끝내 그만두는 것과 휴학 사이에서 휴학으로 결정했고, 대학교 2학년인 그는 언제나 사이토에게 학과 이야기를 듣고는 했다. 사이토는 카츠라의 병실에 찾아와 여러가지 이야기를 했다. 친구를 만드려고 했는데 실패했다는 이야기, 친해지고 싶은 사람에게 웃어 주었는데 그 사람이 더욱 멀어졌다는 이야기, 고등학교 후배의 공부를 도와주는 이야기 등 카츠라를 즐겁게 했다. 가끔은 카츠라의 취향에 맞는 만담을 가지고 와서 카츠라를 웃겨 주기도 했고, 오늘처럼 과일이라던지, 그런 건강한 식품과 어서 나으세요Z와 같은 짧은 편지가 적힌 쪽지를 바구니에 넣어 병실 한구석에 놓아 주었다.
"왔어? 사이토."
아니야, 일단 또 다른 고비는 넘겼다고 했어. 수술도 잘 된 것 같고. 그거 다행이로군요. 이 후배는 말을 하지 않는 건지, 항상 마스크와 같은 것을 쓰거나 마스크를 쓰지 않아도 입을 열지 않고 공책에 말을 쓰고서는 말을 걸고는 했다. 그런 사이토의 특이함이 마음에 든 건지, 카츠라의 사이토에 대한 첫인상은 상당히 좋은 편에 속했다. 물론 카츠라도 사이토의 미소를 처음 본 날에는 오, 세상에. 쟤가 날 죽일 생각인가? 저건 사신의 미소잖아! 이런 생각을 했지만, 지금은 그런 의미가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기에 사이토의 미소에도 놀라지 않았다. - 물론 무서운 것은 어쩔 수 없었다. - 친절하지만 소심한 성격과 무서운 얼굴과 미소를 타고났기에 친구가 없던 그에게는 카츠라가 먼저 다가가 주었다.
1학년들이 처음 들어오는 날이였다. 사이토가 강의실에 들어왔을 때에는 이미 몇 자리 남아있지 않은 상태였고, 사이토는 어쩌다 보니 카츠라의 옆자리에 앉게 되었다. 그 날은 카츠라가 아직 입원하기 전이였다. 교수님의 강의를 듣다 보면 필기를 해야 하는데, 운도 지지리 없던 사이토는 하필 첫날부터 공책만 들고 오고 펜은 가지고 오지 않았었다. 사이토를 주시하고 있던 카츠라는 그를 잠시 바라보더니, 노트를 살짝 찢어 그에게 필담을 건넸다. 펜, 하나 빌려줄게. 강의 끝나고 다시 줘. 그렇게 말을 튼 사이였던 둘은 대학에서 같이 다니며 매점에도 다니고, 서로의 자취방에도 놀러가고는 했다. 그로부터 한달 가량 후에는 사이토가 카츠라의 집에 놀러간 적이 있었다. 카츠라가 비상시를 대비하여 알려주었던 비밀번호가 있었으나, 그것을 누르고 싶지는 않았다. 띵동, 초인종이 경쾌하게 울렸다. 카츠라 씨, 저 왔는데요Z. 그런데 카츠라가 몇 분 동안 말이 없었다. 평소라면 제깍제깍 문을 열어주었을 그가 몇 분 동안이나 말이 없더니, 조급함을 느낀 사이토는 서둘러 카츠라가 알려주었던 그의 집 비밀번호를 누르고 자취방 안으로 들어가 쓰러진 채로 아파하고 있는 카츠라를 직접 병원으로 데려갔다. 사이토는 그 날, 카츠라가 옛적부터 고질적인 병이 있었고 그것을 약화시키기 위해 주기적으로 검진을 받고 약을 받아 먹는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카츠라가 입원한 이후, 사이토는 거의 매일 그의 병실에 들렀다. 카츠라의 병실의 여러 화분들과 몸에 좋다는 음식들은 전부 사이토가 카츠라에게 선물한 것이였다. 하루는 카츠라가 사이토에게 이런 선물들은 과분하다며, 더 이상 선물은 들고 오지 마라고 한 적이 있었다.
사이토는 그 말이 써진 공책을 한 장 떼 카츠라의 손에 쥐어 주고서는 오늘은 이만 가보겠다며 병실을 나갔다. 카츠라는 병실의 문을 바라보다가 눈을 감으며 중얼거렸다. 어서 낫고 싶어.
카츠라 코타로의 하루하루는 무의미했다. 병실 안에서 지겹기만 한 시간을 보내다 보면 별 생각을 다 하다가 하루가 지나가고는 했다. 사이토가 오고서는 달라진 나날들도 있었고, 카츠라는 그의 말들에 진심으로 즐거움을 느꼈고, 행복을 느꼈다. 그러나 무언가 부족하다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었다. 차라리 내가 예전부터 아프지 않았더라면, 그러면 행복한 시간 속에 잠들 수 있었을 텐데. 창가로 본 잿빛 하늘은 금새라도 비가 내릴 듯한 모양새였다. 옛적 생각이 나서, 마음속에 간직하고 있던 조그마한 편지지를 꺼냈다.
'히지카타 토시로가, 카츠라 코타로에게.'
어떻게 잊을 수 있을까, 너를. 한번만 더 너와 함께 경찰놀이를 다시 하며 즐겁게 뛸 수 있다면. 그냥 그 날 잡혀줄 걸 그랬다. 이럴 줄 알았더라면, 그쯤 내기 한번 져줄 걸 그랬다. 다시 함께 놀고 싶어, 히지카타.
올 것이 왔다. 카츠라는 진단을 받았다. 이제 길어야 2달 남은 삶, 병의 증세도 거의 나타나지 않을 테니 최대한 즐겁게 보내라며 퇴원을 시켰다. 무슨 병인지는 몰랐다. 그저 태어났을 때부터 안고 살았던 병이다. 아무도 이 병이 무슨 증세를 가졌는지도 모르고, 세상에서 혼자만 앓는 병이였다. 대학은 아직 휴학 상태였다. 사이토에게는 일부러 알리지 않았다. 자신의 생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것을 알면, 분명 가장 슬퍼할 사람은 사이토 시마루였다. 그렇기에 그에게는 거짓말을 했다. 해야만 했다.
"응. 몇 달 동안은."
그렇게 같이 놀았다. 언제적에 카츠라가 사이토에게 말했던 것을 그는 기억하고 있었는지 함께 바다에도, 계곡에도, 도시에서 가장 높다는 건물에도 가보고 전망을 보거나 여러 군데 돌아다니고는 했다. 놀이공원에서 같이 노는 날도 있었다. 물론 주말이나 사이토가 수업이 있지 않은 날만 가능했었다. 그리고 그 날은 사이토와 카츠라가 숲속을 걸어다닌 뒤 다시 돌아온 날이였다.
"그래, 난 얼른 잘게."
사이토를 보냈다. 통보받은 이래로 한달가량이 지났다. 가고 싶었던 곳들은 사이토와 함께 전부 다녀왔다. 카츠라는 도시가, 특히 차가 싫었다. 특히 트럭이 싫었다. 그래서 사이토에게는 바다나 산, 계곡 같은 곳에 가자고 말한 경우가 많았다. 그저 한적한 시골과도 같은 곳에서 계속 살고 싶었다. 가만히 있다가 자취방 안의 앨범을 스윽 꺼내어 보았다. 가장 돌아가고 싶은 유치원 시절의 사진들이 가득했다. 히지카타, 히지카타. 히지카타. 앨범을 끌어안고서는 눈물을 흘렸다. 사진이 점점 젖어 간다. 추억이 젖어만 갔다.
"히지카타, 어디 있어."
"여기 있어."
귀신과도 같은 그 목소리에 카츠라는 뒤를 돌아보았다. 히지카타? 그래, 나야. 히지카타, 히지카타, 히지카타. 정말 너구나. 카츠라는 히지카타에게 다가갔다. 너도 이제 어른이 되었구나. 나도 어른이야. 응, 알고 있어. 그 날, 네가 떠났던 날부터 계속 네가 보고 싶었어.
"여기에는 왜 왔어?"
"당연한 거 아니야? 범죄자를 잡으러 왔지."
하하, 하. 그렇구나. 결국 경찰이 된 거야? 히지카타. 응, 경찰이야. 히지카타는 카츠라의 손목을 잡더니 수갑을 채웠다. 지금이라면 갈 수 있을 것 같지 않아? 응, 갈 수 있을 것 같아. 네 옆에서 누울 수 있을 것 같아. 끌려 들어갈 것만 같아, 히지카타.
"꿈이 아니지?"
"아니야. 카츠라, 같이 가자. 나와 함께 있을 수 있도록."
"당연하지, 나는...아, 졸려. 히지카타, 잠시 한숨만 잘게. 지금 널 만났어...드디어, 만났어. 이제 편안한 마지막을 맞이할 수 있을 것 같아..."
수 년 전, 카츠라가 15세 때의 일이였다. 뉴스에 한 가지의 교통사고 사건이 방송되었다. 15세의 남중생이 트럭에 치여 숨졌다는 사건이였다. 그리고 그 사건은 신문에도 보도되었다. 그 당시로부터 6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그 신문을 카츠라는 줄곧 보관해 왔다. 그 사건은 모두에게 잊혀져 왔다. 그러나 카츠라는 그 사건을 영원토록 잊지 못했다. 그 사건의 제목은 이랬다.
[15세 남중생 히지카타 군, 트럭에 치여 안타깝게 목숨을 잃어]
사이토는 유성 하나를 보았다. 별똥별에 소원을 빌면 이루어진다고 했지. 사이토는 가만히 손을 맞댄 채 속으로 기도했다. 원하는 것은 없으니, 카츠라 선배의 병이 다 나았으면 좋겠어요Z. 카츠라 선배, 좋아해요. 선배가 다 낳으면 기도할 겁니다Z. 별똥별이 질 때에, 카츠라는 앨범을 꼬옥 안고 눈을 감았다. 앨범 사이에는 그가 줄곧 보던, 히지카타가 그에게 썼던 편지지가 한 장 있었다. 편지지에는 이렇게 써져 있었다.
[카츠라와 히지카타, 최고의 친구. 히지카타가, 카츠라에게. 나중에 나랑 사귀자, 카츠라. 좋아해.]
답장하지 못한 편지에는 눈물 자국만이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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