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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것은 매우 참혹한 전쟁이었습니다."
나는 조용히 입을 열었다. 이 손은 여전히 피를 묻히고 있다. 그 피는 영원히 닦이지 않는다. 나는 그것을 알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모르는 척을 하며 살아가고 있다. 나는 위선자다. 이미 쌓이고 쌓인 죄를 이제서야 갚고자 하는. 옆에는 많은 사람이 있다. 그녀도, 그도, 피를 묻혔다. 그건 전쟁이었다. 피를 묻히지 않고서는 살아갈 수 없었다. 한 사람은 두려움에 전장에서 도망을 갔다. 그러나 대부분은 망설임 없이 명령을 따랐다. 나 또한 그 중 한 명이었다. 처음에는 주저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어느샌가 같은 사람을 죽인다는 고통은 무감각해져 점점 알 수 없게 되어 버렸고, 결국에는 아무런 감정도 느껴지지 않게 되었다. 그렇게 나는, 입을 닫았다. 그렇게 참혹한 꿈은 깨졌다.
똑똑. 누군가가 사무실의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났다. 누군가, 라고 해도. 아마 누구인지는 뻔할 텐데. 어제의 꿈으로 인해 민감한 것이 분명했다. 그리고 당연하게도 그녀는 사무실 안으로 들어와, 안색을 살피고서는 말을 걸었다.
"대령님. 어디 불편하신 곳이라도?"
"아니, 별로. 괜찮은데."
악몽이라도 꾸신 건지요? 내 걱정은 하지 않아도 돼. 일부러 이런 말을 내뱉는 수밖에 없었다. 그렇다고 해도 너는 모두 알고 있을 게 분명한데. 그녀가 몸을 돌려 다시 나갔다. 그러면, 수고하십시오. 모르는 척을 하고 있었다. 오늘은 그가 이 곳에 잠시 왔다 간다고 했다. 아아, 오늘도 바쁜 하루가 되겠어. 미녀의 에스코트와, 쌓인 일처리. 손님의 방문, 그리고 언제 걸려 올지도 모르는 전화까지. 다시 보니까 꽤 바쁜 사람이네, 나. 잠시 실소를 흘렸던 걸지도 모르겠다. 같은 사무실에 있던 하보크가 허벅지가 예쁜 미인과 데이트 일정이라도 잡혔냐고 물어보았다. 내가 그렇게 나쁜 남자로 보이냐, 너.
"여, 대령. 나 왔다고."
"강철, 예정 시간보다 몇 시간이나 빠른데."
"어, 일이 생각보다 빨리 끝났다고. 자, 이거 보고서. 안 써오면 또 뭐라고 하려고 했지? 그럴 줄 알았다고. 그렇지, 알?"
ㅇ, 어, 응. 죄송해요, 대령님. 형이 보고서를 막 써서 제가 고치기는 했는데. 이거로도 괜찮을까요? 그들이 건넨 서류를 보았다. 한 쪽은 오른쪽 팔과 왼쪽 다리가 오토메일, 다른 쪽은 몸 전신이 텅 빈 갑옷. 동부에서는 꽤나 유명하지. 그들과의 첫 만남이 떠올랐다. 처음에는 완전히 꼬맹이였는데, 그래도 많이 컸기는 컸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 그래도 가끔은. 가끔은 말이지, 너희를 닮은, 나 때문에 죽어간 어린 아이들이 떠올라. 갑자기 표정이 어두워졌던 걸까, 강철이 내게 물었다. 대령, 어디 아파? 알폰스도 따라 물었다. 어디 편찮으세요? 그러면 웃으면서 답을 한다.
"아니, 괜찮다. 잠시 멍해져서 말이지, 하하."
이 녀석들은, 그 아이들이 아니다. 그런 생각을 자꾸만 해야 한다. 그래야만 내 무의식이 그 아이들을 떠올리지 않게 돼. 그건 그렇고 강철, 네 키는 언제쯤 크는 거지? 결국 또 강철을 놀려먹고 말았다. 이거, 은근히 재미있다니까.
시찰이나 다녀올까 한다. 브레다 소위, 펄만 준위. 여기 잘 지키고 있어. 그들이 쑥덕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잘 들어보니까 내 표정이 데이트 나가는 표정이라고 한다. 어떻게 알았냐, 너희. 그렇게 티가 많이 나나. 뭐, 별 상관은 없다만. 마을 전체를 둘러보았다. 아아, 우리 예쁜 아가씨는 어디 있을까. 여성 앞에서는 젠틀하게, 그리고 멋져 보일 수 있도록. 미소가 최고 아닐까.
"아, 거기 계셨군요, 대령님!"
오호, 역시 미니스커트는 최, 아니, 이게 아니지. 제발 중위한테만 걸리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마구 든다. 대충 일 처리 시간 조금 전까지만 들어가면 되겠지. 오늘도 꽤 예쁘다고, 에이미. 공기 조절이나 해서 아가씨를 조금 쓰러뜨린 다음 젠틀하게 잡으면 마음에 불꽃이 콰앙, 하고. 완벽해.
"그래서 말이야, 우리 엘리시아가 오늘은 엄마랑 같이 나들이를 나갔다네! 곧 있으면 걸을 수도 있지 않을까나~?"
"휴즈, 너. 내가 막 전화하지 말라고 하지 않았던가."
"그래도 있잖아~. 아, 그리고 말이지! 우리 아내가 그러는데, 엘리시아가 점점 더 크고 있대! 너무 귀엽지 않아~? 사진 볼래? 아, 통화 중이라 못 보지? 슬프네, 로이도 볼 수 있으면 좋을 텐데."
왔다, 문제의 그 전화. 이 녀석, 매일 쓸데없는 일로 전화를 건다. 아내 자랑이라거나, 딸 자랑이라거나. 아내나 딸을 무척이나 사랑하는 건 알지만, 이런 걸 대체 왜 군 전용 회선을 써서 전달하냐는 말이다. 하아, 한숨이 나온다. 그래도 이 녀석은, 친구니까. 그러려니 하면서 전화를 받는다. 솔직히 짜증은 난다만. 특히 마지막 말이. 이러니 저러니 매일 딸과 아내 자랑을 줄줄이 늘어놓는데, 마지막에는 꼭 그 말이 나온다.
"너도 아내와 자식을 만들어 보라고! 얼마나 좋은데~!"
그럴 줄 알았다. 이제 질린다, 질려. 언제나 똑같은 끝. 그러면 언제나 나는 같은 반응을 했다. 쾅, 하고 집어던지며 끊어 버렸다. 오늘은 그러지 않았다. 휴즈도 그것을 의아해하며 내게 물었다. 어라, 오늘은 갑자기 안 끊네? 그냥, 끊기 싫어서. 그래? 무슨 일 있었나 보지?
"꿈을 꿨어. 옛날 꿈을. 휴즈, 난 정말로 옳은 길을..."
"분명히 옳은 길이야. 로이, 여기까지 왔잖아."
"...그렇지? 이 세상을 바꾸게 된다면, 조금 더 나은 방향으로 바꿀 수 있다면, 그런 일은 다시 일어나지 않을 거라 믿어도 되는 거겠지, 휴즈?"
"당연하지. 왜 그런 걸 물어? 앞으로도 조금씩 갚으면서 나아가면 되는 거야, 로이. 난 언제나 네 편이니까."
뚝. 눈물이 흘렀다. 갑자기, 갑자기 왜. 이유는 알 수 없었다. 그러나 하나는 분명했다. 최대한 목소리를 낮췄다. 갑자기 울컥했다는 것을 들키고 싶지는 않아.
"고맙다, 휴즈."
그렇게 전화를 끊었다.
"오늘은 일을 다 하셨네요."
"그럼, 중위. 내가 누구인 줄 알고."
중위가 웬일이냐는 표정으로 나를 쳐다본다. 대체 나를 어떻게 생각하는 거야? 그런 생각을 하는데, 갑자기 그녀가 문을 열고 나가려 하다가 다시 이쪽으로 돌아선다.
"그래서, 대령님. 오늘은 즐거우셨나요?"
"뭐?"
"오늘 아침에 나쁜 꿈이라도 꾸셨겠죠. 제가 알고 있다는 걸 모르셨을 리가 없는데."
"하하, 당연하지. 그렇네, 오늘은 참."
많은 일이 있었네. 평소와 똑같은데, 어째 오늘은 조금 더 일이 많은 기분이야. 얼른 가서 쉬어야겠어. 얼른 주무세요, 대령님. 내일은 무능해지시면 안 됩니다. 중위, 대체 자네는...
"다시 여쭤보겠습니다. 오늘, 즐거우셨나요?"
살짝 머리를 긁었다. 하아, 땅을 향해 한숨을 쉬었다. 그래, 중위. 자네 질문에는 답을 해야겠지.
"즐거웠지, 자네들 덕분에. 내일도 이런 하루가 계속되면 좋을 텐데 말이야."
오늘도 조금은 앞으로 나아간 거겠지. 그렇게 생각하며 멋쩍은 웃음을 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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