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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다자] 망자의 걸음은 이어지고
-60분 전력 글입니다. 주제는 혼수 상태이나 크게 부각되지는 않습니다.
-죽음, 병원 등의 소재가 있습니다. 소재 주의 부탁드립니다.
-커플이 커플인 만큼(...)약한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살아, 살아. 제발 살아야 해."
몇 번이고 되뇌었다. 네가 살아야 해, 살아야만 해. 더 이상 평범할 수 없으니까, 나에게는 너를 살려야 할 책임이 있으니까. 죽지 마라, 죽지 말아 달라, 그를 데려가지 말아요. 그의 급한 마음을 외면하고 아직도 저리 가녀리게, 구원을 바라며 누워 있다. 포기해, 포기하면 편해. 주변에서 수군거리는 소리가 거슬려 못 합니다, 포기. 절대 못 해요. 라 고래 역으로 소리를 쳤다. 그리고 그의 바람이 무색하게도 그는 듣고야 말았다.
제발, 다자이.
삐익-.
숨조차 죽은 듯 고요한 병실은 참으로 간만이었다.
"자네는 어쩔 수가 없는 바보다!"
"사람을 구하는 쪽이 되어라."
아, 또 그거. 근래 질리도록 꾸는 악몽이다. 다자이는 뒤척이며 이래저래 거슬리는 잠자리에서 꼼지락, 꼼지락 움직였다. 꿈에서 그는 말하고 또 말했다. 모두를 지키는 사람이 되라 제게 말했다. 퍽이나 구할 수 있겠다, 소년은 뭐라 욕설을 지껄이며 지루한 꿈에서 깨어나고 싶어 했었다. 그에게 있어 세상은 꿈, 꿈으로 꾸는 것은 모두 가치 없고 금방 사라지고야 마는 신기루. 스스로가 남긴 상처로 가득한 몸이 사근사근 아파 왔다. 아니, 오히려 저렸다고 해야 맞는 표현이었다. 이렇게 아픈 건 싫은데. 붕대를 감은 얇은 손목이 차가운 손 끝에 닿았다. 아무래도 버릇이 통 낫지를 않아서, 이렇게 꽂고 있는 수액도 슬슬 익숙해질 법은 하다만 어째 그것이 부자연스럽게 느껴지는 것인지는 다자이도 알 도리가 없었다. 머리는 좋았다, 허나 좋아서 무엇을 한단 말인가.
그는 치료를 받는 도중에 의사의 말을 듣지 않고 항상 그의 말을 어기고는 했다. 죽고 싶다, 제가 바래 왔던 평생의 소원이자, 영원의 바람이며, 영영 사라지지 않을 제 모든 것, 꿈, 그리고 미래. 죽음, 그러나 병으로 죽게 될 것이라고는 누가 상상이나 했겠는가. 그는 병으로 죽는다, 그것은 자신이 가장 잘 알고 있었고 혹여라도 지금 이 이야기를 읽고 있는 모두가 알고 있을 것이리라. 나는 평화롭게 죽고 싶습니다, 이 부조리로 가득한 세상에 그것으로 만족하지 못하고 더욱 악을 향해 퇴보하며 추악한 면을 부각시키는 사회에 나 같은 것 하나 사라진다고 문제될 것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열 여덟의 소년은 그렇게 말하며 죽음을 염원하였고, 그 눈은 공허하다 못해 그 어느 것도 존재하지 않았으며 세상에 존재하는 것들 하나조차도 담지 못하는 눈동자였다.
다자이가 제 몸에 꽂은 주사 바늘을 뽑으려고 할 때, 그가 소년의 상태를 보기 위해 들어왔다. 오다 사쿠노스케라 하는 남자였다. 그는 다자이의 죽음을 보고 싶지 않았다. 천애고아, 그런 다자이를 발견한 것은 바로 오다 자신이었기에 더 살리고 싶었던 것은 당연한 마음이었다. 그러나, 그러나 그가 살아날 가능성은, 이 병을 과연 고칠 수 있을까, 하는 두려움이 전신에 사무쳐 덧없는 환상을 만든다. 네가 쓰러지는 꿈, 네가 꽃을 흩날리며 쓰러지는 환각. 아니, 이런 것을 생각해서는 아니 된다. 그의 상태를 가장 잘 아는 것은 자신이다, 그렇기에 찾아내야 한다.
"다자이, 또인가."
소년은 눈에 띄게 실망한 기색이 역력한 표정을 애를 쓰며 지어 보였다. 어쩜 자신이 사고를 칠 타이밍을 저리 줄줄이 꿰고 다니는지, 주로 쓰이는 옛 말을 빌리자면 한 마디로 '귀신이 곡할 노릇'이다. 그만큼 오다는 다자이를 잘 알았다. 이내 그는 실망감이 가득했던 제 표정을 은은한 비웃음을 지은 표정으로 바꾸며 조소를 띈 얼굴로 오다의 얼굴을 정면으로 뚫어져라 쳐다보았다.
"이거, 이거. 나에 대해 너무 잘 아는 것 아닌가? 오다 사쿠. 덕분에 또 죽지 못했어."
"아픈 건 싫다며."
그래도 나, 곧 죽을 거니까. 흠흠, 다자이는 예의 그 자살에 관한 노래를 흥얼거리며(자신이 직접 작사, 작곡을 한 노래였는데, 그가 직접 만든 노래치고는 오다는 그 곡이 상당히 좋은 곡이라고 생각했다.)교묘하게 말을 돌림과 동시에 하늘의 계시를 기다리고 있다고 답했다.
소년은 하얀색에 가까운 벽으로 둘러싸인 좁은 독방을 사용하고 있었다. 삐익, 삐익. 다자이의 심장이 뛰고 있다는 것을 알려주는 소리다. 그는 침대에 누워 있었고, 그 주변에는 여러 영양소로 만든 액체와 혈액을 담은 이러저러한 것들이 주렁주렁 매달려 있는 채로 그들과 연결되어 있는 바늘들이 스스로 입힌 상처들의 흔적으로 가득한 다자이의 팔에 꽂혀 있었다. 그의 병이 무엇 때문인가는 아무도 몰랐다. 겉으로 보기에는 멀쩡해 보이는 것이, 아마 이 병원에 있는 모두를 제외하고는 아무도 그가 아플 것이라고는 상상조차 못할 것이리라. 죽음을 향해 절대적인 존경을 품고 있는 그에게 하늘이 내린 병이라고, 오다는 그의 병에 관해 그리 여기고 있었다. 아픔을 참는 건지, 아니면 정말 통증이 없는 기상천외한 병인지, 다자이 본인을 제외하고는 알 길이 없었다. 조금 더 알려줬으면 좋겠는데, 환자가 누워 있는 병실 내의 침대 왼편에, 오다는 작은 의자를 가져와 그 곳에 앉아 있었다. 제 무릎 위에 둔 손을 만지작거리다 손에서 땀이 나는 것을 느끼고서는 주먹을 꽈악 쥐었다. 다자이, 너는 왜 죽음을 바라는 것이며, 왜 내 앞에서 비명을 지르지도 않고 악착같이 버티고 있는 건가. 오다는 특유의 무표정한 얼굴에 약간의 분노가 섞인 듯한 얼굴로 병실의 바닥을 내려보고 있었다.
"아, 맞아. 오늘도 써야 하는데, 깜박하고 있었어."
그 시간이 왔다. 최근 그에게는 하나의 버릇이 생겼다. 며칠 전부터 그는 꿈을 꿨다고 말을 하더니, 그 말을 꺼낸 첫 날에는 다급한 얼굴로 제 얼굴을 바라보면서 오다 사쿠, 살아 있나? 자네, 살아 있는 거지? 라 연신 되물으며 제 심장에서 복부로 이어진 부분에 마치 무언가를 찾고 있는 듯한 급하다 못해 간절해 보이기까지 하는(사실 간절하다는 개념과는 살짝 달라 보였으나 오다의 머릿속에는 간절하다라는 단어 이외에 그 모습을 표현할 수 있을 다른 어휘는 떠오르지 않았다.)모습으로 경악을 감추지 못했다. 오다는 그런 다자이의 모습을 처음 보았기에, 속으로는 오다 자신이 더 놀랐다 해도, 아니, 이런 상황이라면 당혹함으로 가득한 당사자보다는 그를 지켜보는 타인이 더 황당하다는 사실에 대해서는 아마 그 누구도 이상하게 생각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 날, 그는 갑작스럽게 수첩을 선물해 달라는 요청을 해왔고, 오다는 그에 별다른 물음 없이 그와 어울리는 새까만 흑색의 수첩을 그에게 선물했다. 그는 오다가 직접 선물한 검정 수첩을 꺼내더니, 언제나와 같이 펜을 빌려달라는 짧은 말과 함께 오다가 건넨 펜을 가지고서 무언가 적기 시작했다. 그러고 보니, 다자이의 필체를 오다는 단 한 번도 본 적이 없었다. 소년의 사적인 일에 관여하고 싶지 않았기에, 남자는 그 이상 묻지 않았고 그의 수첩을 들춰 본다는 생각은 하지도 않았다. 수첩에 기록된 내용에 대해 그가 아는 것이라고는 그것이 다자이의 '꿈'에 관련된 내용이라는 것, 단지 그것 하나 뿐이었다.
며칠 전 밤의 일이었다. 다자이는 예의 그 특유의 눈웃음을 짓더니, 그의 상태를 체크하고 있던 오다에게 말을 걸었다.
"오다 사쿠, 내가 최근 꿈을 꾸는데 말이야. 그 꿈에는 자네와 내가 나온다네. 허나 지금의 우리의 모습과는 조금 달라서, 자네는 총을 들고 있었지."
제가 총을 들고 있었다고 했다. 그 말은 즉슨, 그의 꿈에는 사람에게 이익을 주는 대신 해하는 자신의 모습이 나왔다는 의미렸다. 순간적으로 몸이 멈추는 것을 느꼈다. 그러나 그와 동시에 어차피 꿈이니 별 상관 없을 거라는 생각도 들었다. 왜, 꿈은 현실과 반대되는 내용이 주로 나온다고 하지 않았던가. 오다는 미세하게, 그리고 교묘하게 살포시 떨리는 마음을 주체하기 위해서 그에게 살며시 질문을 던졌다.
"그러면 너는?"
다자이는 그 장난기 가득한 웃음을 간직한 채로 얼굴을 창가 쪽으로 돌렸다. 그러고 보니 창가에 대한 설명을 깜박 빼먹었는데, 그 창가는 병실 내, 다자이의 기준으로 오른쪽 벽에 달려 있는 조그마한 창문을 의미하는 것이다. 다자이의 그런 행동은 제 질문에 대답할 뜻이 없다는 것을 은유적으로 나타내는 행동으로, 그것을 단번에 이해한 오다는 그 이상은 캐묻지 않고 그의 병실을 나갔다.
그러나 그 날 이후, 불행하게도 우리의 의사는, 오다는 곧 깨닫고 말았다. 온 병원이 소란스러웠다. 일부는 그 녀석이 그럴 줄 알았다며 왁왁, 자신감 넘치는 말투, 혹은 비꼬는 말투로 병원의 고마움을 모르는 그런 꼬맹이는 죽게 놔두자고 말한다. 다른 쪽에서는 그대로 환자인데 우리가 살려야 할 책임이 있다며 그를 돌보기를 주장한다. 나머지는 모두 중립이거나 묵묵부답으로, 결국에는 그를 데려온 오다에게 책임이 돌아오는 것은 당연지사였다. 자신이 꿈을 꾸기 시작한 그를 혼자 둔다는 일이 얼마나 어리석은 일이었는가를 필사적으로 생각한다. 그의 병실에 자리한 깨진 유리병이 제 심장을 도려내기 시작한다. 그 도려내는 파편마저도 밀어내지 못하고 제 속에 품으며 그 아픔을 간직하고야 마는 오다는 곧 다자이를 찾기 시작한다. 그 이후였다. 다자이의 오른쪽 눈 위에 감긴 붕대에 그의 피가 튀어 있는 모습이 보인다. 호흡이 불규칙하다, 제 심장이 아려 온다. 급히 수술을 해야 한다고 했다. 오다는 그를 수술실로 옮겼다. 덜덜 떨리는 손에 힘이 들어가지 않는다. 실패할 것이라고 했다, 그런 부정적인 의견이 지배적이었다. 그러나 오다는 보란 듯이 그 수술을 성공적으로 해냈다.
그 후에 다자이는 괜찮아지는 듯 싶었다. 출혈은 그에게 문제가 되지 않는 듯 싶었다. 그의 피로 가득한 병실을 직접 손으로 닦고, 청소하고, 씻기기까지 하였으나 오다는 그를 미워하지 않았다. 되려 그에 대한 연민과 동정의 마음만 더욱 강해지고야 말았다. 그러나 소년은 그 후로 음식에 입을 잘 대지 않았다. 말수도 줄었고, 원체 창백했던 피부는 눈에 띄게 희멀건 상태로 한 눈에 보아도 상태가 좋지 않아 보였다. 그는 잠을 잘 자지 못한다고 했다. 다자이, 잘 먹어. 푹 자고, 혹시 문제가 있으면 말해. 오다는 그에게 신신당부를 하였으나, 다자이는 그것을 건성건성 듣고 있음과 동시에 한 귀로 흘리며 대강 넘길 뿐이라는 것을 오다는 누구보다 잘 알았다. 다자이가 그 이후에 그에게 한 말은 이것 뿐이었다.
"오다 사쿠, 꿈이 점점 더 선명해지고 있어. 이제 내게는 전부 다 보여, 꽃이 피고 지는 모습까지도 모두 볼 수 있다, 이 말일세. 이제 얼마 남지 않았어. 곧 이 꿈에서 깰 수 있을 거야..."
그 말을 듣고 몇 시간도 채 지나지 않아 그는 정신을 잃었다. 말 그대로 혼수 상태에 빠진 것이다. 오다는 본능적으로 직감하고야 말았다. 자신이 가장 바라지 않던 것을.
남자는 종종 생각했다. 소년과 만났던 날, 처음 치료해준 날, 별명으로 불리기 시작한 날, 그리고 여러 가지 선물을 해주기 시작했던 날. 담배갑에서 담배 한 개비를 꺼내 입에 살짝 문 후, 라이터로 불을 붙이고는 연기를 들이켰다. 담배를 끊은 지 꽤 지났으나, 어째 오늘은 피우고 싶은 충동을 억누를 수가 없었다. 오다 군, 이제 그만 포기하게. 처음부터 이렇게 될 것을 알고 있었지 않았나. 당장 방금 그가 듣고 온 말이다. 그러나 다자이는 이미 그에게 있어서 단순한 18세 소년도 아니었고, 그의 환자라고만 칭하기에는 턱없이 부족했다. 오다에게는 그가 너무나도 소중했기에, 소년을 으스러지게 만들고 싶지 않았다. 그가 정신을 못 차리고도 이제 보름이다. 오다는 그 보름 동안 잠 한 숨 제대로 이룬 날이 없었다. 어쩌다 잠에 들어도 영원토록 기억에 남을 만한 수준의 악몽을 꾸게 되었기에, 오다는 잠에 들지 못했다. 그리하여 담배를 피우면 좀 나아질 것 같았다. 점점 취하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몽롱한 것이, 이대로 정신을 다른 곳에 둔다면 조금이라도 부정적인 생각을 덜 할 수 있을까 잠시 생각했다만은, 오다는 이내 그것을 그만두었다.
사실을 말하자면, 처음 보았을 때부터 알고 있었다. 아마 다자이도 알고 있었을 것이다. 그의 병은 낫지 못하는 병이었다. 언젠가는 이렇게 될 것이라는 것을 오다는 이미 오래전부터 알고 있었으나 그와 동시에 누구보다도 소년이 그의 운명을 빗겨갈 수 있기를 바라고 있는 사람이었다. 그는 죽음을 바라고 있었다. 그러나 오다는 그가 제발 살기를 바랬다. 나름 그와 가장 가까운 사람이라 생각했건만 정작 본인과 제 소중한 사람은 아이러니하게도 서로가 소망하던 것이 반대였다. 그리고 그 날, 다른 의사들은 그에게 마지막 인사를 할 준비를 하라고 말해 주었고, 오다는 급히 그가 누워있는 곳으로 그의 전력을 다해 뛰어, 누가 보아도 아주 다급해 아무도 감히 그의 앞을 가로막을 생각을 하지 않았다.
"이건, 꿈인가."
다자이는 제 손을 꽈악, 쥐었다. 손목까지 붕대가 감겨 있었다. 제게 아픔을 주고 제약을 주는 바늘은 이제 없다. 자유롭다는 느낌이 들었다. 세상이라는 이름의 환영에서 나올 수 있었다는 쾌감은 감히 다른 것과 비교할 만한 것이 아니었다. 다자이는 막힌 오른눈 대신 흐릿한 왼쪽 눈으로 앞을 바라보았다. 먹구름이 낀 듯 까무잡잡한 것이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듯 하였다. 그러다가 그는 한 사람을 보았다. 어두운 붉은 기가 감도는 머리카락과 모든 것을 꿰뚫는 듯한 푸른 눈동자, 그리고 듬성듬성 자란 수염이 꼭 제가 기억하는 그 사람과 똑 닮아 있었기에 소년의 마음 속에 반가움이 피어오르는 것은 당연한 일이라 할 수 있었다. 그 의미가 퇴색되기 전에, 다자이는 곧 그가 자신의 꿈 속에서 본 오다 사쿠노스케의 모습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오다 사쿠, 자네는 참 잔인한 사람이야."
비릿한 웃음소리가 제 입 밖으로 흘러나온다.
"그렇게나 날 이승에 옭아매지 못해 안달이더니. 이제는 내가 바라던 곳으로의, 지옥으로 향하는 길도 자네가 직접 안내해주는 게로군."
그럴 거면 왜 날 살리려고 그렇게 노력했던 거야? 자신의 물음이 닿지 않을 거라는 것을 알면서도 소년은 물었다. 가자, 다자이. 제 눈 앞의 오다가 손을 내민다. 깨어나, 이제는 아무것도 없을 테니. 총기를 사용한 탓에, 그의 손에는 화상 자국과 굳은살이 군데군데 박혀 있다. 거 참, 내가 아는 오다 사쿠는 사람을 살리는 사람이었는데. 자네는 달라, 다르지만 그와 비슷한 냄새가 나. 자신이 그렇게 말하자, 오다는 별 다른 표정을 짓지 않았다. 그저 평소의 무표정으로 그런가, 한 마디를 짧게 내뱉더니 다른 말을 뒤에 덧붙일 뿐이다.
"다자이, 그 세계의 나는 사람을 적을 자격이 충분한 사람인가?"
"응, 충분하고도 남을 사람일세. 오다 사쿠."
그의 거친 손이 제 차가운 손에 닿더니, 곧 그것을 꽈악 거머쥐었다. 그와 동시에 눈이 머는 듯한 느낌과 함께 온 시야가 흑색으로 흐려지더니 귀에서 사람 열 명 정도는 미치게 만들고도 남을 만한 이명이 삐익, 하고 고막을 진동시킨다. 바라던 것이 찾아왔다, 그 속에서 느낀 것은 환희였으나 그와 동시에 한 가지 마음에 걸리는 점이라면 마음에 품고 있던 상대에게 먼저 가게 되어 미안하다는 말을 전하지 못했다는 점이었다. 그렇게 꽃은 붉고도 검은 잎을 휘날리며 하염없는 모습으로 저물었다.
-60분 전력 글입니다. 주제는 혼수 상태이나 크게 부각되지는 않습니다.
-죽음, 병원 등의 소재가 있습니다. 소재 주의 부탁드립니다.
-커플이 커플인 만큼(...)약한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살아, 살아. 제발 살아야 해."
몇 번이고 되뇌었다. 네가 살아야 해, 살아야만 해. 더 이상 평범할 수 없으니까, 나에게는 너를 살려야 할 책임이 있으니까. 죽지 마라, 죽지 말아 달라, 그를 데려가지 말아요. 그의 급한 마음을 외면하고 아직도 저리 가녀리게, 구원을 바라며 누워 있다. 포기해, 포기하면 편해. 주변에서 수군거리는 소리가 거슬려 못 합니다, 포기. 절대 못 해요. 라 고래 역으로 소리를 쳤다. 그리고 그의 바람이 무색하게도 그는 듣고야 말았다.
제발, 다자이.
삐익-.
숨조차 죽은 듯 고요한 병실은 참으로 간만이었다.
"자네는 어쩔 수가 없는 바보다!"
"사람을 구하는 쪽이 되어라."
아, 또 그거. 근래 질리도록 꾸는 악몽이다. 다자이는 뒤척이며 이래저래 거슬리는 잠자리에서 꼼지락, 꼼지락 움직였다. 꿈에서 그는 말하고 또 말했다. 모두를 지키는 사람이 되라 제게 말했다. 퍽이나 구할 수 있겠다, 소년은 뭐라 욕설을 지껄이며 지루한 꿈에서 깨어나고 싶어 했었다. 그에게 있어 세상은 꿈, 꿈으로 꾸는 것은 모두 가치 없고 금방 사라지고야 마는 신기루. 스스로가 남긴 상처로 가득한 몸이 사근사근 아파 왔다. 아니, 오히려 저렸다고 해야 맞는 표현이었다. 이렇게 아픈 건 싫은데. 붕대를 감은 얇은 손목이 차가운 손 끝에 닿았다. 아무래도 버릇이 통 낫지를 않아서, 이렇게 꽂고 있는 수액도 슬슬 익숙해질 법은 하다만 어째 그것이 부자연스럽게 느껴지는 것인지는 다자이도 알 도리가 없었다. 머리는 좋았다, 허나 좋아서 무엇을 한단 말인가.
그는 치료를 받는 도중에 의사의 말을 듣지 않고 항상 그의 말을 어기고는 했다. 죽고 싶다, 제가 바래 왔던 평생의 소원이자, 영원의 바람이며, 영영 사라지지 않을 제 모든 것, 꿈, 그리고 미래. 죽음, 그러나 병으로 죽게 될 것이라고는 누가 상상이나 했겠는가. 그는 병으로 죽는다, 그것은 자신이 가장 잘 알고 있었고 혹여라도 지금 이 이야기를 읽고 있는 모두가 알고 있을 것이리라. 나는 평화롭게 죽고 싶습니다, 이 부조리로 가득한 세상에 그것으로 만족하지 못하고 더욱 악을 향해 퇴보하며 추악한 면을 부각시키는 사회에 나 같은 것 하나 사라진다고 문제될 것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열 여덟의 소년은 그렇게 말하며 죽음을 염원하였고, 그 눈은 공허하다 못해 그 어느 것도 존재하지 않았으며 세상에 존재하는 것들 하나조차도 담지 못하는 눈동자였다.
다자이가 제 몸에 꽂은 주사 바늘을 뽑으려고 할 때, 그가 소년의 상태를 보기 위해 들어왔다. 오다 사쿠노스케라 하는 남자였다. 그는 다자이의 죽음을 보고 싶지 않았다. 천애고아, 그런 다자이를 발견한 것은 바로 오다 자신이었기에 더 살리고 싶었던 것은 당연한 마음이었다. 그러나, 그러나 그가 살아날 가능성은, 이 병을 과연 고칠 수 있을까, 하는 두려움이 전신에 사무쳐 덧없는 환상을 만든다. 네가 쓰러지는 꿈, 네가 꽃을 흩날리며 쓰러지는 환각. 아니, 이런 것을 생각해서는 아니 된다. 그의 상태를 가장 잘 아는 것은 자신이다, 그렇기에 찾아내야 한다.
"다자이, 또인가."
소년은 눈에 띄게 실망한 기색이 역력한 표정을 애를 쓰며 지어 보였다. 어쩜 자신이 사고를 칠 타이밍을 저리 줄줄이 꿰고 다니는지, 주로 쓰이는 옛 말을 빌리자면 한 마디로 '귀신이 곡할 노릇'이다. 그만큼 오다는 다자이를 잘 알았다. 이내 그는 실망감이 가득했던 제 표정을 은은한 비웃음을 지은 표정으로 바꾸며 조소를 띈 얼굴로 오다의 얼굴을 정면으로 뚫어져라 쳐다보았다.
"이거, 이거. 나에 대해 너무 잘 아는 것 아닌가? 오다 사쿠. 덕분에 또 죽지 못했어."
"아픈 건 싫다며."
그래도 나, 곧 죽을 거니까. 흠흠, 다자이는 예의 그 자살에 관한 노래를 흥얼거리며(자신이 직접 작사, 작곡을 한 노래였는데, 그가 직접 만든 노래치고는 오다는 그 곡이 상당히 좋은 곡이라고 생각했다.)교묘하게 말을 돌림과 동시에 하늘의 계시를 기다리고 있다고 답했다.
소년은 하얀색에 가까운 벽으로 둘러싸인 좁은 독방을 사용하고 있었다. 삐익, 삐익. 다자이의 심장이 뛰고 있다는 것을 알려주는 소리다. 그는 침대에 누워 있었고, 그 주변에는 여러 영양소로 만든 액체와 혈액을 담은 이러저러한 것들이 주렁주렁 매달려 있는 채로 그들과 연결되어 있는 바늘들이 스스로 입힌 상처들의 흔적으로 가득한 다자이의 팔에 꽂혀 있었다. 그의 병이 무엇 때문인가는 아무도 몰랐다. 겉으로 보기에는 멀쩡해 보이는 것이, 아마 이 병원에 있는 모두를 제외하고는 아무도 그가 아플 것이라고는 상상조차 못할 것이리라. 죽음을 향해 절대적인 존경을 품고 있는 그에게 하늘이 내린 병이라고, 오다는 그의 병에 관해 그리 여기고 있었다. 아픔을 참는 건지, 아니면 정말 통증이 없는 기상천외한 병인지, 다자이 본인을 제외하고는 알 길이 없었다. 조금 더 알려줬으면 좋겠는데, 환자가 누워 있는 병실 내의 침대 왼편에, 오다는 작은 의자를 가져와 그 곳에 앉아 있었다. 제 무릎 위에 둔 손을 만지작거리다 손에서 땀이 나는 것을 느끼고서는 주먹을 꽈악 쥐었다. 다자이, 너는 왜 죽음을 바라는 것이며, 왜 내 앞에서 비명을 지르지도 않고 악착같이 버티고 있는 건가. 오다는 특유의 무표정한 얼굴에 약간의 분노가 섞인 듯한 얼굴로 병실의 바닥을 내려보고 있었다.
"아, 맞아. 오늘도 써야 하는데, 깜박하고 있었어."
그 시간이 왔다. 최근 그에게는 하나의 버릇이 생겼다. 며칠 전부터 그는 꿈을 꿨다고 말을 하더니, 그 말을 꺼낸 첫 날에는 다급한 얼굴로 제 얼굴을 바라보면서 오다 사쿠, 살아 있나? 자네, 살아 있는 거지? 라 연신 되물으며 제 심장에서 복부로 이어진 부분에 마치 무언가를 찾고 있는 듯한 급하다 못해 간절해 보이기까지 하는(사실 간절하다는 개념과는 살짝 달라 보였으나 오다의 머릿속에는 간절하다라는 단어 이외에 그 모습을 표현할 수 있을 다른 어휘는 떠오르지 않았다.)모습으로 경악을 감추지 못했다. 오다는 그런 다자이의 모습을 처음 보았기에, 속으로는 오다 자신이 더 놀랐다 해도, 아니, 이런 상황이라면 당혹함으로 가득한 당사자보다는 그를 지켜보는 타인이 더 황당하다는 사실에 대해서는 아마 그 누구도 이상하게 생각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 날, 그는 갑작스럽게 수첩을 선물해 달라는 요청을 해왔고, 오다는 그에 별다른 물음 없이 그와 어울리는 새까만 흑색의 수첩을 그에게 선물했다. 그는 오다가 직접 선물한 검정 수첩을 꺼내더니, 언제나와 같이 펜을 빌려달라는 짧은 말과 함께 오다가 건넨 펜을 가지고서 무언가 적기 시작했다. 그러고 보니, 다자이의 필체를 오다는 단 한 번도 본 적이 없었다. 소년의 사적인 일에 관여하고 싶지 않았기에, 남자는 그 이상 묻지 않았고 그의 수첩을 들춰 본다는 생각은 하지도 않았다. 수첩에 기록된 내용에 대해 그가 아는 것이라고는 그것이 다자이의 '꿈'에 관련된 내용이라는 것, 단지 그것 하나 뿐이었다.
며칠 전 밤의 일이었다. 다자이는 예의 그 특유의 눈웃음을 짓더니, 그의 상태를 체크하고 있던 오다에게 말을 걸었다.
"오다 사쿠, 내가 최근 꿈을 꾸는데 말이야. 그 꿈에는 자네와 내가 나온다네. 허나 지금의 우리의 모습과는 조금 달라서, 자네는 총을 들고 있었지."
제가 총을 들고 있었다고 했다. 그 말은 즉슨, 그의 꿈에는 사람에게 이익을 주는 대신 해하는 자신의 모습이 나왔다는 의미렸다. 순간적으로 몸이 멈추는 것을 느꼈다. 그러나 그와 동시에 어차피 꿈이니 별 상관 없을 거라는 생각도 들었다. 왜, 꿈은 현실과 반대되는 내용이 주로 나온다고 하지 않았던가. 오다는 미세하게, 그리고 교묘하게 살포시 떨리는 마음을 주체하기 위해서 그에게 살며시 질문을 던졌다.
"그러면 너는?"
다자이는 그 장난기 가득한 웃음을 간직한 채로 얼굴을 창가 쪽으로 돌렸다. 그러고 보니 창가에 대한 설명을 깜박 빼먹었는데, 그 창가는 병실 내, 다자이의 기준으로 오른쪽 벽에 달려 있는 조그마한 창문을 의미하는 것이다. 다자이의 그런 행동은 제 질문에 대답할 뜻이 없다는 것을 은유적으로 나타내는 행동으로, 그것을 단번에 이해한 오다는 그 이상은 캐묻지 않고 그의 병실을 나갔다.
그러나 그 날 이후, 불행하게도 우리의 의사는, 오다는 곧 깨닫고 말았다. 온 병원이 소란스러웠다. 일부는 그 녀석이 그럴 줄 알았다며 왁왁, 자신감 넘치는 말투, 혹은 비꼬는 말투로 병원의 고마움을 모르는 그런 꼬맹이는 죽게 놔두자고 말한다. 다른 쪽에서는 그대로 환자인데 우리가 살려야 할 책임이 있다며 그를 돌보기를 주장한다. 나머지는 모두 중립이거나 묵묵부답으로, 결국에는 그를 데려온 오다에게 책임이 돌아오는 것은 당연지사였다. 자신이 꿈을 꾸기 시작한 그를 혼자 둔다는 일이 얼마나 어리석은 일이었는가를 필사적으로 생각한다. 그의 병실에 자리한 깨진 유리병이 제 심장을 도려내기 시작한다. 그 도려내는 파편마저도 밀어내지 못하고 제 속에 품으며 그 아픔을 간직하고야 마는 오다는 곧 다자이를 찾기 시작한다. 그 이후였다. 다자이의 오른쪽 눈 위에 감긴 붕대에 그의 피가 튀어 있는 모습이 보인다. 호흡이 불규칙하다, 제 심장이 아려 온다. 급히 수술을 해야 한다고 했다. 오다는 그를 수술실로 옮겼다. 덜덜 떨리는 손에 힘이 들어가지 않는다. 실패할 것이라고 했다, 그런 부정적인 의견이 지배적이었다. 그러나 오다는 보란 듯이 그 수술을 성공적으로 해냈다.
그 후에 다자이는 괜찮아지는 듯 싶었다. 출혈은 그에게 문제가 되지 않는 듯 싶었다. 그의 피로 가득한 병실을 직접 손으로 닦고, 청소하고, 씻기기까지 하였으나 오다는 그를 미워하지 않았다. 되려 그에 대한 연민과 동정의 마음만 더욱 강해지고야 말았다. 그러나 소년은 그 후로 음식에 입을 잘 대지 않았다. 말수도 줄었고, 원체 창백했던 피부는 눈에 띄게 희멀건 상태로 한 눈에 보아도 상태가 좋지 않아 보였다. 그는 잠을 잘 자지 못한다고 했다. 다자이, 잘 먹어. 푹 자고, 혹시 문제가 있으면 말해. 오다는 그에게 신신당부를 하였으나, 다자이는 그것을 건성건성 듣고 있음과 동시에 한 귀로 흘리며 대강 넘길 뿐이라는 것을 오다는 누구보다 잘 알았다. 다자이가 그 이후에 그에게 한 말은 이것 뿐이었다.
"오다 사쿠, 꿈이 점점 더 선명해지고 있어. 이제 내게는 전부 다 보여, 꽃이 피고 지는 모습까지도 모두 볼 수 있다, 이 말일세. 이제 얼마 남지 않았어. 곧 이 꿈에서 깰 수 있을 거야..."
그 말을 듣고 몇 시간도 채 지나지 않아 그는 정신을 잃었다. 말 그대로 혼수 상태에 빠진 것이다. 오다는 본능적으로 직감하고야 말았다. 자신이 가장 바라지 않던 것을.
남자는 종종 생각했다. 소년과 만났던 날, 처음 치료해준 날, 별명으로 불리기 시작한 날, 그리고 여러 가지 선물을 해주기 시작했던 날. 담배갑에서 담배 한 개비를 꺼내 입에 살짝 문 후, 라이터로 불을 붙이고는 연기를 들이켰다. 담배를 끊은 지 꽤 지났으나, 어째 오늘은 피우고 싶은 충동을 억누를 수가 없었다. 오다 군, 이제 그만 포기하게. 처음부터 이렇게 될 것을 알고 있었지 않았나. 당장 방금 그가 듣고 온 말이다. 그러나 다자이는 이미 그에게 있어서 단순한 18세 소년도 아니었고, 그의 환자라고만 칭하기에는 턱없이 부족했다. 오다에게는 그가 너무나도 소중했기에, 소년을 으스러지게 만들고 싶지 않았다. 그가 정신을 못 차리고도 이제 보름이다. 오다는 그 보름 동안 잠 한 숨 제대로 이룬 날이 없었다. 어쩌다 잠에 들어도 영원토록 기억에 남을 만한 수준의 악몽을 꾸게 되었기에, 오다는 잠에 들지 못했다. 그리하여 담배를 피우면 좀 나아질 것 같았다. 점점 취하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몽롱한 것이, 이대로 정신을 다른 곳에 둔다면 조금이라도 부정적인 생각을 덜 할 수 있을까 잠시 생각했다만은, 오다는 이내 그것을 그만두었다.
사실을 말하자면, 처음 보았을 때부터 알고 있었다. 아마 다자이도 알고 있었을 것이다. 그의 병은 낫지 못하는 병이었다. 언젠가는 이렇게 될 것이라는 것을 오다는 이미 오래전부터 알고 있었으나 그와 동시에 누구보다도 소년이 그의 운명을 빗겨갈 수 있기를 바라고 있는 사람이었다. 그는 죽음을 바라고 있었다. 그러나 오다는 그가 제발 살기를 바랬다. 나름 그와 가장 가까운 사람이라 생각했건만 정작 본인과 제 소중한 사람은 아이러니하게도 서로가 소망하던 것이 반대였다. 그리고 그 날, 다른 의사들은 그에게 마지막 인사를 할 준비를 하라고 말해 주었고, 오다는 급히 그가 누워있는 곳으로 그의 전력을 다해 뛰어, 누가 보아도 아주 다급해 아무도 감히 그의 앞을 가로막을 생각을 하지 않았다.
"이건, 꿈인가."
다자이는 제 손을 꽈악, 쥐었다. 손목까지 붕대가 감겨 있었다. 제게 아픔을 주고 제약을 주는 바늘은 이제 없다. 자유롭다는 느낌이 들었다. 세상이라는 이름의 환영에서 나올 수 있었다는 쾌감은 감히 다른 것과 비교할 만한 것이 아니었다. 다자이는 막힌 오른눈 대신 흐릿한 왼쪽 눈으로 앞을 바라보았다. 먹구름이 낀 듯 까무잡잡한 것이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듯 하였다. 그러다가 그는 한 사람을 보았다. 어두운 붉은 기가 감도는 머리카락과 모든 것을 꿰뚫는 듯한 푸른 눈동자, 그리고 듬성듬성 자란 수염이 꼭 제가 기억하는 그 사람과 똑 닮아 있었기에 소년의 마음 속에 반가움이 피어오르는 것은 당연한 일이라 할 수 있었다. 그 의미가 퇴색되기 전에, 다자이는 곧 그가 자신의 꿈 속에서 본 오다 사쿠노스케의 모습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오다 사쿠, 자네는 참 잔인한 사람이야."
비릿한 웃음소리가 제 입 밖으로 흘러나온다.
"그렇게나 날 이승에 옭아매지 못해 안달이더니. 이제는 내가 바라던 곳으로의, 지옥으로 향하는 길도 자네가 직접 안내해주는 게로군."
그럴 거면 왜 날 살리려고 그렇게 노력했던 거야? 자신의 물음이 닿지 않을 거라는 것을 알면서도 소년은 물었다. 가자, 다자이. 제 눈 앞의 오다가 손을 내민다. 깨어나, 이제는 아무것도 없을 테니. 총기를 사용한 탓에, 그의 손에는 화상 자국과 굳은살이 군데군데 박혀 있다. 거 참, 내가 아는 오다 사쿠는 사람을 살리는 사람이었는데. 자네는 달라, 다르지만 그와 비슷한 냄새가 나. 자신이 그렇게 말하자, 오다는 별 다른 표정을 짓지 않았다. 그저 평소의 무표정으로 그런가, 한 마디를 짧게 내뱉더니 다른 말을 뒤에 덧붙일 뿐이다.
"다자이, 그 세계의 나는 사람을 적을 자격이 충분한 사람인가?"
"응, 충분하고도 남을 사람일세. 오다 사쿠."
그의 거친 손이 제 차가운 손에 닿더니, 곧 그것을 꽈악 거머쥐었다. 그와 동시에 눈이 머는 듯한 느낌과 함께 온 시야가 흑색으로 흐려지더니 귀에서 사람 열 명 정도는 미치게 만들고도 남을 만한 이명이 삐익, 하고 고막을 진동시킨다. 바라던 것이 찾아왔다, 그 속에서 느낀 것은 환희였으나 그와 동시에 한 가지 마음에 걸리는 점이라면 마음에 품고 있던 상대에게 먼저 가게 되어 미안하다는 말을 전하지 못했다는 점이었다. 그렇게 꽃은 붉고도 검은 잎을 휘날리며 하염없는 모습으로 저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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